흙수저를 위한 영어공부법 3 – 읽기 – 수다피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영어학습은 듣기 한 시간, 읽기 한 시간, 이렇게 하루 두 시간을 꾸준히 영어에 투자하는 것이다. 더 해봐야 피곤하기만 하고 능률이 안 오른다. 하루 이틀 정도는 너댓 시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일주일도 채 못 되어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고작 두 시간? 나는 고등학교 때 하루 종일 영어 공부했는데? 이럴 사람이 있다면 내가 앞에 쓴 글에서 소개한 듣기 훈련 한 번이라도 해보고 말하길 바란다. 여러분이 이제껏 영어공부라고 해왔던 것은 그냥 소꼽놀이 수준이다.


읽기도 중요하다. 물론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당연히 일순위는 듣기이다. 제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저절로 귀가 뚫리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듣기 훈련을 해보면 알겠지만 하루에 듣기 훈련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영어 문장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 많은 영어 단어와 문장을 접하기 위해서는 읽기가 병행되어야 한다.


대학생들이 토익이나 토플 문제집을 푸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왜 저렇게 아까운 시간을 엉뚱한 곳에 낭비할까. 물론 나 역시 그랬던 시절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토익이나 토플 문제집에서 이른바 장문 독해랍시고 접하는 대여섯 단락 정도의 독해는 내 기준으로는 단문이다. 그건 듣기 훈련하기에 딱 적당한 분량이지 그걸 읽기라고 하면 곤란하다. 고작해야 그 정도 분량의 글을 읽고 문제 푸는데 시간을 허비하니,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은 엄청 많은데 정작 공부량은 절대 부족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영어가 늘고 싶으면 일단 집안에 있는 각종 유형의 문제집을 모두 버려라. 그런 건 나중에 토익이나 토플 시험 볼 일 있을 때 한 달쯤 전에 어떤 식으로 문제가 나오나 확인 차 한 번 훑어보는 용도로 쓰는 책이지 그게 주된 공부가 되면 안 된다. 그리고 본인이 어느 정도 영어에 자신감이 붙기 전까지는 가급적 토익, 토플 시험도 보지 마라. 듣기, 읽기 훈련을 한다고 갑자기 획기적으로 영어가 느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공부량이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영어 문법이 체화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때까지는 발전하는 게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괜히 토익 같은 거 봤다가 성적이 잘 안 나오면 불안해지고 내가 지금 하는 방식이 맞는 건가 하는 의심만 생긴다. 그냥 그런 거 관심 끊고 꾸준히 공부하다가 CNN뉴스가 완벽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한 번 듣고도 대강의 내용의 감이 잡힌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토익 시험 봐도 될 것이다.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왜 이게 안 돼서 그 고생을 했지?


읽기의 요령은 내가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라는 자부심을 약간 지니고 있다. 물론 이미 그런 식으로 공부하고 있을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일단 읽기도 좋은 스크립트를 구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뉴욕 타임즈를 추천한다. 뉴욕 타임즈 웹사이트에 가서 관심 가는 기사 제목이 있으면 프린트한다. 분량은 12포인트 기준으로 처음에는 하루에 A4용지 두 장 정도로 시작해서 점차 늘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종 목표는 영어 원서 한 권을 완독하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다. 


뉴욕 타임즈를 권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그 기사가 가장 최근의 영어로 작성된 문장들이라는 점이다. 나도 고등학생 때는 성문 종합영어가 닳아서 새로 살 정도로 성문 시리즈 독해를 읽었는데 거기 나온 영어는 솔직한 말로 구닥다리 영어다.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분명 송성문씨도 나름 심혈을 기울여 격조높고 수준 있는 문장들을 엄선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너무 과거의 영어다. 이를테면 외국인이 한국어 공부한답시고 관동별곡을 읽고 있거나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을…’ 뭐 이런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그냥 웃음이 나올 것이다. 성문 시리즈에서 소개하는 문장들은 영문학 전공할 사람이 아니면 볼 필요가 없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난이도가 적절하다. 나는 독해훈련을 타임으로 했는데 이건 너무 어렵다. 타임 독해를 했던 이유는 독해 요령을 소개할 때 설명하기로 한다. 뉴욕 타임즈를 줄줄 읽을 정도 수준이 되면 미국 일반인과 대화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게다가 덤으로 시사 상식에 밝아진다. 대학생들 취업 앞두고 무슨 시사상식 사전 같은 걸로 따로 공부하는데 영어공부도 하면서 시사상식도 넓히고 이런 걸 일석이조 내지는 일타쌍피라 부른다.


한 시간 동안 A4 두장 분량을 읽으라고?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질 사람들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신은 한 시간 동안 한국어 문장 A4 2장을 읽는 것이 어려운가? 우리가 미국인 수준까지는 못 되어도 비슷한 수준까지는 가야 한다. 그리고 여러분의 잘못된 독해 습관을 바로잡으면 나중에는 A4 2장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내가 타임 독해를 했던 이유를 말하겠다. 결과적으로 내가 나만의 독해법을 개발하게 된 계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앞선 글에서 귀인을 만나 영어 공부를 바르게 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은 내 학과 선배였다. 당시 그는 종로 시사영어사(지금은 YBM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에서 AFKN 청취와 타임 독해 강좌를 열고 있었다. 군대 가기 전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분도 영어능력자가 아니었다. 군 면제자인 그는 개인적인 계기로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초인적인 노력으로 영어능력자가 되었다. 하루에 CNN방송을 열다섯 시간씩 들었다고 하는데, 그 사람처럼 영어로 먹고 사는 길 택하지 않는 이상 굳이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해보면 알겠지만 아무나 못한다. 그 사람도 어떤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대오각성해서 영어 공부에 매진한 것이지 일반인은 하루도 못버티고 나가 떨어진다. 아무튼 우리 사회 고질적인 학연의 병폐 덕에 나는 수강료 내지 않고 그 선배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타임 독해가 사람 잡는 공부이다. 문장마다 모르는 단어가 최소 한 개 이상은 튀어나오고 두 시간을 읽어도 한 단락을 채 못 끝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렇지만 클래스의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라 예습을 해가지 않으면 도저히 그사람들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부지런히 사전 찾아가며 악전고투하던 어느날이었다. 조금 읽기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만 그래봐야 두 시간에 두 단락을 채 못 끝낸 상태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시간 동안 한 단락을 채 못 읽었네. 그런데 내가 실제로 영어 문장을 읽은 시간이 얼마나 되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영어 공부라고 부르는 행위의 절반 이상은 사전 넘기는 시간으로 소모되고 있었다. 그때만해도 나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습관적으로 사전을 뒤지던 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독해를 한다. 한 번 실험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단어 나와도 사전 찾지 말고 그냥 읽어나가자. 그 다음부터 모르는 단어 나오면 밑줄만 그어놓고 그냥 읽어나갔다. 그러자 신기한 현상이 발생했다. 굳이 사전 안 찾아도 앞에 밑줄 그어놓은 단어의 의미가 유추되는 것이다. 물론 끝까지 모르겠는 단어도 많았다. 하지만 일단 기사 전체를 읽기 전까지는 사전에 손을 대지 않았다. 기사를 끝까지 읽고나면 비로소 밑줄 그은 단어를 찾아보았다. 이런 식으로 독해를 하니 훨씬 능률적인 독해가 가능해졌고 전체 글의 윤곽이 눈에 들어오자 이해도 빨라졌다. 나중에는 한 시간에 기사 한 꼭지를 읽는 것도 가능해졌다. 


내가 영어공부를 두 번째로 했던 시기가 있다고 지난 번 글에서 말한 바 있다. 조언을 얻으려고 그 선배를 찾아가서 “역시 독해는 타임으로 해야겠죠?”라고 묻자 그 선배가 하는 말이 “얌마, 요새 누가 타임으로 공부하냐? 미국 사람들도 안 쓰는 단어가 태반인데.” 이 소리를 듣자 그야말로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이걸 걍 아구를 돌려놓을까? 내가 지 타임 강좌 
때문에 얼마나 생고생을 했는데. 아무튼 덕분에 사전 중독증에서 벗어난 점을 인정해서 실제로 돌리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름대로 터득한 읽기의 요령이다.


뉴욕 타임즈 기사 한꼭지 내지는 두꼭지(A4 2장 분량)를 출력한다. 컴 화면으로는 집중이 잘 안 된다. 출력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다른 책을 구해도 상관 없다. 다만 시중 독해 교재는 피해라. 제시문의 길이가 너무 짧다. 읽을 거리가 준비되었으면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어나간다. 속도는 최대한 끌어올려서 원어민 아나운서가 방송하는 정도까지 맞추는 것이 목표이다.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오고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되어도 무시하고 그냥 읽어나가라. 당장 눈 앞의 기사 내용을 파악하는 것보다 당신의 두뇌가 빠른 스피드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읽는 것에만 집중하라. 이 훈련이 잘 되면 나중에는 말하는 속도로 영문을 읽어나가면서도 의미파악을 할 수 있다. 끝까지 읽었으면 전체 기사 내용을 머리속으로 정리해본다. 대강 정리가 되었으면 이번에는 첫 단락을 읽는다. 이때도 가급적 빠른 속도로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는 사전 찾지 말고 밑줄만 그어놓아라. 다 읽었으면 단락의 내용을 정리해보고 중간에 튀어나온 모르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문장 전체를 통해 유추해본다. 첫 단락 독해를 마쳤으면 이제 사전을 찾으면서 본격적으로 의미파악에 들어간다. 사전은 당연히 캠브리지 영영사전을 말한다. 나는 국내 영한사전은 그냥 단어장으로 간주한다. 첫단락 독해가 끝나면 두번째 단락을 똑같이 빠른 속도로 읽고 모르는 단어에 밑줄을 그어놓는다. 그리고 반복. 이렇게 마지막 단락까지 독해가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최대 출력으로 한 번 읽는다. 나중에 뉴욕타임즈의 난이도가 평이하다고 느껴지면 영어 원서에 도전해보는 것도 매우 좋은 공부이다. 다만 가급적 신간을 택해 현재 원어민들이 쓰는 표현을 익히도록 한다.


듣기와 읽기를 이런 식으로 한 시간씩 도합 두 시간(일요일에는 쉬어도 무방하다)씩만 영어에 투자해도 일 년 뒤의 당신은 스스로가 놀랄만큼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입에서 자연스럽게 욕이 나오게 될 것이다. 씨발, 이럴 거 뭐하러 학교에서 영어 한답시고 6년간 생고생했지? 그 다음부터는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된다. 영어 관련 직종으로 진출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계속 난이도를 높여가며 훈련하면 된다. 그게 목표가 아닌 사람은 그 시점에 토익이나 토플 학원 한 달 정도 등록해서 점수 따고 심심풀이로 CNN방송 보고 미드 보고 모르는 표현 나오면 찾아보고 관심 있는 분야의 영문 서적 읽어보고 그렇게 살면 된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 외우려고 기를 쓸 필요 없다. 우리는 학교 시험 대비로 단어를 암기했던 기억들이 있어서 단어를 무조건 외우려고 하는데 다 부질없다. 당신이 모르는 우리말 단어를 들으면 어떻게 하는가? 사전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몇 번 입으로 중얼대보고 상황이 되면 문장에서 사용해보고 그게 전부일 것이다. 연습장에다 동그라미 치면서 열 번씩 써보고 하면서 우리 말 단어 공부를 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영어 단어도 그렇게 하면 된다. 빈도수가 높은 단어는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공부하다보면 싫어도 저절로 외워지고 빈도수가 낮은 단어는 그만큼 일상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다. 잊어버려도 무방하다. 영어가 늘려면 단어 집착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선 어학원에서 하루에 백 단어씩 학생들에게 외워오라고 숙제를 내준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전해준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려면 최소 3000단어를 알아야 한다는데 하루에 백 개씩이면 그 학원 한달만 다니면 원어민 되겠네? 영어 수준이 낮은 나라니까 가능한 미친 교육방식이다. 언어능력은 그런 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영어약장수에 따르면 인간이 외국어를 습득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해당 외국어 사용자와 의미있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라고 한다. 어린 아이들이 영어를 금방 배우는 것은 아이들이 언어습득을 잘하는 무슨 Language acquisition device 같은 게 있어서가 절대 아니고, 아이들이 친구를 금방 사귀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고 하면서 의미있는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다. 미국 이민 간 사람들이 애들은 금방 영어가 느는데 나는 왜 안 늘까 고민하는데, 한국인 친구도 만들기 힘든 성인이 한 교실에만 모아놓으면 금방 친구가 되서 같이 공 차고 어울려 노는 아이들의 친화력을 무슨 재주로 따라가겠는가. 


L,I.D 가설은 한마디로 개 풀뜯어 먹는 소리에 불과하다. 실제로 내가 소개하는 방법을 성인들은 소화해내지만 어린 아이들은 금방 지쳐 나가 떨어진다. 물론 인지언어학 초창기에 연구의 절대부족으로 그런 가설이 나온 상황은 이해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린이들은 외국어를 금방 배우는데 성인들은 힘들게 배우니까. 그러나 이제 다양한 연구에 의해 인간의 언어습득 양상이 밝혀지고 있는 현재에도 L.I.D 가설을 부르짖으며 학부모를 호도하고 아이들을 고문하는 영어 사교육 집단은 일종의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내가 소개한 방법은 일종의 차선책이다. 최선은 미국인 친구를 많이 만드는 것인데, 영어가 안 되니 미국인 친구 만들기 힘들고, 뭐 이런 악순환의 반복 때문에 영어가 안 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내가 소개한 차선책으로 어느 정도 영어가 궤도에 올랐다는 판단이 들면 어떤 경로로든 좋으니 영어 사용자와 친분을 맺길 바란다. 그런 사람들과 수준 있는 토론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공부이다. 더구나 그것은 공부로 느껴지지도 않을만큼 흥미진진하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1530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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