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를 위한 영어공부법 5 – 마음가짐 – 수다피플

원래 어제 올린 문법 편을 끝으로 영어학습법은 그만 올리려고 했다. 큰 줄거리는 다 말했고 남은 건 학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 정도에 불과한데 구태여 그런 것까지 정리해서 올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一狼이라는 분이 올린 댓글을 읽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학습법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서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일랑님의 글부터 보자.

VOA Learning English에서 뉴스를 교육용으로 재편집해 천천히 읽어주는 걸 찾아서,

(실제 뉴스는 약 2분, 천천히 읽어줘서 약 3분… 말씀하신 1분짜리보단 좀 길어도,

 녹음된 mp3 다운로드 + 스크립트 포함이라 당장 접근하기 쉬워서요.)

레벨1부터 차차 해보고 잘 되면 레벨 올려야지 ㅋㅋ 하는 자만심,

+ 레벨1에 이 정도 분량이면 1시간 내로 가능하겠지 싶어서 본문 말씀대로 해봤다가

실제론 꼬박 1시간 40분 걸리는 경험을 해보니 자괴감 쩌네요 ㅎㅎ;;

스크립트 원문 읽고 해석하는 거 자체엔 불편함이 없는데

& 뉴스 자체는 귀로 듣고 내용 파악은 충분히 다 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리스닝으로 받아쓰기 해보니 다 뽀록나네요 이건… 여태까지 완전 헛배운 느낌 들고.

1) 스크립트 읽으면 다 보이는데, 이딴 걸(?) 한번에 못듣는 게 이리 많았던가 싶고

2) 귀로 듣고 직접 타이핑 해놓고도, 정신 차리고 다시 읽어보면 웬 비문이 이리 많은지 ㅋㅋ

그리고, 안들리면 안들리는대로 들은 그대로 적어야 하는데

제대로 안들리니까 적으면서 무의식중에 말을 만들고 있는 현상이 생기더군요…

그러니까, 안들린 단어는 빠져있고 없는 문구는 적혀져서 재구성되어 있고 등등,

왜 이게 이렇게 들렸었지 싶은 당황스러움…

본문에서 뭘 가르쳐 주실려고 저 말씀들을 하셨는지,

듣기에 왜 훈련이 필요한지 등등 뼈저리게 느꼈네요…

감사합니다.

새벽에 이 댓글을 읽다가 너무 웃음이 나와서 읽고 또 읽고 반복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날밤을 샐 뻔했다. 어떤 고생을 했을지 눈에 훤히 그림이 그려진다. 훈련소 있을 때 막판에 소원수리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조교들이 욕하고 기합주고 그런 거 쓰려다가 그동안 미운정이 든데다가 에휴 쟤들이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냐 이런 생각이 들어서 차마 못 쓰고, 뭘 쓸까 고민하던 중에, 이런 고생을 나만 할 수는 없지 싶어서 이런 식으로 작성했다. 대한민국 국방현실을 몸으로 느끼고 충격이 큽니다.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실제로 훈련을 받아보니 고작 이 정도 훈련으로 북한군과 싸울 능력이 배양될 수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듭니다. 다음 기수부터라도 훈련 내용을 더 강화해서 명실상부한 강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뭐 이런 식으로 썼는데 나중에 동기들하고 얘기하다보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고 한 절반 정도가 훈련이 약하다 더 빡세게 해야한다 이런 내용을 적었다고 한다. 꼭 그때 생각이 난다.

그렇지만 일랑님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오른 글 하나 보고 직접 실행에 옮겨본다는 것이 보통 결단력으로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힘든 듣기 훈련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시간 사십 분이나 했다는 점 정말 대단하다. 웬만한 사람은 이거 하느니 차라리 총검술을 한 시간 하겠다고 할만큼 엄청난 두뇌 혹사이다.

본문 중에 ‘안들린 단어는 빠져 있고 없는 문구는 적혀서 재구성되어 있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이분의 두뇌에 이미 어느 정도 영어 듣기에 대한 신경망이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초보 때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기초적인 듣기가 가능하니까 뇌가 어떻게든 의미가 통하는 비슷한 발음의 단어로 대체해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문장을 구성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 시작했을 때 그냥 멍하니 넋놓고 나불나불의 홍수에 휩쓸려나가기만 했다. 못해도 석달은 공부했을 때 비로소 이런 현상들이 발생했다. 누구보다 본인이 느꼈겠지만 여기서 멈춰버리면 항상 이 정도 수준으로 영어를 이해하게 된다. 꾸준히 공부해서 보다 정확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시기 바란다.

댓글들을 보면 확실히 영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조언이 될만한 것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꾸준히 해라, 열심히 해라, 이런 건 너무 흔하고 뭔가 색다른 것은 없을까 생각하다가 전부터 느꼈던 것을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질없는 완벽주의에 빠져들지 마라.

예전에 공부할 때를 돌이켜보면 나역시 부질없는 완벽주의에 빠져 있을 때가 있었고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문법을 완벽히 알아야 영어를 잘 할 수 있다 생각하고 미친듯이 문법을 파는 사람들, 단어를 완벽히 알아야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하고 보케불러리 22,000, 33,000 나아가 44,000가지고 단어만 외우는 사람들, 발음에 집착하는 사람들, 기타 다양한 양상의 완벽주의를 말한다.

문법의 세세한 사항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한국어 문법 세세하게 다 알고 있는가? 세세하게 몰라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던 경험이 있는가? 마찬가지로 단어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현재 제주도 방언을 포함한 한국어 단어를 모두 아는가? 만약, 그런 걸 다 알아야 영어를 할 수 있다면 세상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언어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문법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생활한다. 헷갈리는 게 있으면 국립국어원 같은 데 한 번 뒤져보고 아, 이런 거구나 하고 이해하면 그만이다.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모르는 학술용어나 방언도 부지기수이고, 인터넷에서 쏟아져나오는 신조어도 부지기수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의 한국어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그때 물어보고 익히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가 안 되는 이유는 그런 부분이 완벽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군대에서 쉬는 날 다같이 미국 코메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거기 어떤 꼬맹이가 나와서 뭐라뭐라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보고 있던 말년 병장이 감탄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야! 미국에선 일곱 살 먹은 애들도 영어 하네?” 모두가 박장대소했는데 다른 말년이 덧붙인다. “야, 미국에선 거지도 영어 잘 한다더라.”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이 농담들이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본인들이 그런 의미를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손가락에 장을 지지기 내기도 할 수 있지만…

일곱살 먹은 아이가 되었든 거지가 되었든 미국인들은 영어 능력이 몸에 배어 있다. 물론 그들은 어휘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영어라는 틀 안에서 쉽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본인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 영어능력이 몸에 밴 상태가 아니다. 가장 시급히 해야할 것은 마치 축구선수들이 순간의 상황에서 돌파를 할 것인지 패스를 할 것인지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처럼 상황에 맞는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몸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그게 구축이 안 되어서 영어가 안 되는 거지 문법이 모자라거나 단어가 모자라서 영어가 안 되는 게 아니다. 일상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이 그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조금 힘든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훈련 방식은 내가 이미 소개했다. 

사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내가 영어를 국가 주도로 가르치는 것에 회의를 느끼는 것이다. 나는 학교 영어 우수생이었지만 그때 배운 영어는 실제 영어 구사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중에 영어 훈련법을 알고 일정 수준에 오르긴 했지만, 내가 영어와 관련없는 일을 하게 되자 그 능력은 다시 쇠퇴했다. 만약 그 능력을 유지하려면 따로 영어를 사용할 일이 없는 나로서는 지난 십년간 매일 미국 방송을 듣고 책을 읽어야 하는데, 당장 살기도 바쁜데 그럴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없다. 쓰지도 않을 외국어에 투자한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가늠도 못할 지경이다. 왜 국가가 모든 사람을 이런 상태에 머무르게 강제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무튼 본인이 필요에 의해 영어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부질없는 완벽주의에 빠지지 말고 실제 영어구사능력을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고 공부하시길 바란다.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놓아줄줄도 알아야 한다. 어학 공부는 너무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다보면 전체를 망친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1726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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