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칼럼]처음으로 대통령 선거 유권자가 된 아들에게 – 수다피플






아빠 대학 동아리에 전해 내려오는 실화다. 1987년 6월 항쟁 때 1학년이었던 87학번들을 이끌었던 86학번 선배 한 명이 있었다. 겁먹은 후배들을 다독이고 스스로 앞장서서 싸웠고 6월항쟁으로 이룩한 16년 만의 대통령 직선제 선거 때 후배들에게 공정선거 감시단 활동 요령을 목이 쉬도록 주지시켰던 선배였지.



그런데 막상 선거날 후배들이 투표하기 위해 각지의 본가와 투표소를 찾아갈 때 선배는 동아리방을 지켰단다. 초등학교를 워낙 일찍 들어간 덕에 나이가 어렸고 그래서 재수한 후배들은 으레 보유한 한 표의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지.


 “얘들아 투표들 잘하고 와라.”


 “네 선배님.”


이런 웃픈 시츄에이션이 벌어졌던 거야. 



올해엔 너도 투표권을 가지게 됐구나. 축하할 일이지만 아쉬움도 크다. 최소한 1년 아니 더 이른 나이라 해도 위 선배의 예에서 보듯 전혀 문제가 없는데 결혼도 할 수 있고 잘못하면 깜방에도 가야 하는 나이에 투표만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은 올해도 고쳐지지 않았구나.



어쨌든 네게는 첫 선거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주권 행사 어쩌고 하는 거창한 얘긴 접겠다. 워낙 많이 들었을 게고, 또 듣지도 않을 테니까. 다년간의 투표 경험자(?)로서 투표 대상을 결정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숙련된 조교(?)로서 몇 가지 팁을 전해 줄 따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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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네게 이익을 가져다줄 투표를 택해라. 국가와 국민, 역사, 노동자 농민, 정의, 평화 뭐 기타 등등 선거는 ‘좋은말대잔치’이기도 하다. 선거에 나온 사람들은 다 역도 선수들이다. 그 어깨로 들어 올리지 못할 게 없을 것 같거든. 그 진지한 호소에도 귀 기울여 봐야겠지만 사실 누가 누가 진짜인지 분별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네가 기준을 삼아야 할 건 네 이익이다. 


밥 얻어먹고 돈푼이나 챙길 후보를 찾으라는 말이 아니다. 정치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네가 관심이 없어도 정치는 네 호주머니에, 또 아빠 엄마의 통장 잔고와 회사 일에 관심이 많다. 우리가 여행 계획을 짜고 네가 군대를 가고 직장을 얻고 동생이 어떤 제도하에서 대학 전쟁을 치러야 할지 그 모든 일의 배후에 정치는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있어.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할수록 나쁜 정치인들이 기뻐한다. 마음 놓고 그 이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야. “나는 정치 같은 거에 관심이 없어” 하고 쿨하게 거드름피우는 친구가 있으면 그 멍청함을 맘껏 비웃어 줘도 좋다. 그건 비밀번호 적힌 현금카드 잃어버리고도 “뭐 누가 빼 가겠어?” 하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까. 



정치에 참여한다는 건 네 이익을 구하는 일이다. 누가 군대 기간을 줄여 주는지, 청년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구해 줄 것인지, 누가 전쟁의 위협을 줄이고 평화를 지킬 수 있으며 아빠 엄마의 노후와 네 미래를 그나마 좀 낫게 바꿀 수 있을지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야. 그러면 우선 뭐라고 하는지를 들어야겠지. 그리고 그게 말이 되는지를 따져야겠지.



적어도 정치인의 ‘자질’은 그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가가 아니라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정당이 내게 얼마나 훌륭한 이득을 가져다줄 것인지로 결정된다. “인품이 훌륭하다.”는 건 장인어른 자리에 적합한 기준이지 정치인 선택 기준은 아니야. 아 물론 최소한의 인성 교육과 사회화가 안 된 사람이 대통령에 앉아 저지른 참사를 지켜본 처지로 ‘기본’은 갖춰야겠지. 그게 우리에게 이익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성폭행 공모범에다가 제 결혼 반대했다고 장인어른을 수십 년 동안 제 집에 들이지 않은 패륜아는 제외하는 게 좋겠구나. 그 인품이 저열해서라기보다는 그 저렴함이 가져다줄 우리의 불이익 때문에. 



다음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은 다수결도 아니고 대의정치도 아니고 삼권분립도 아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야. 아빠는 아빠와 네가 살고 있는 현대 한국의 가장 큰 ‘적폐’는 존엄한 인간에 대한 배려의 원천적 부족이라고 본다. 아군이 아니면, 아니 아군에게 해를 끼칠 것 같으면, 그것도 모자라 그럴 가능성이 있으면 싹쓸이를 해 버렸던 전쟁은, 그 전쟁이 끝나고도 17년 후에 태어난 아빠와 6.25 하면 임진왜란과 동급으로 여겨질 네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적지가 ‘대구’라고, 내가 왜 그런 꼴통 도시 ‘고담 대구’가 본적이냐고 분노했던 네게 일면 공감하면서도 나무랐던 이유는 바로 네 표현이 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전체에 대한 낙인이었기 때문이야. 아빠도 대구 경북에서 보이는 투표 행태나 정치적 선택에 누구보다 격렬히 반대하고 또 솔직히 경멸(!)하고 우려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이나 그들의 선택을 ‘제거’할 수도 없고, ‘숙청’할 수도 없으며 ‘청산’할 수도 없다고 봐. 지속적인 설득과 비판, 정치인들의 노력, 그리고 그들 스스로의 반성으로 변화될 문제고, 그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해. 



네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류는 <반지의 제왕>에나 등장할 절대악 사우론 같은 존재를 상정하고 자신이 프로도 베긴스나 된 양, 자신이나 자신의 정당에 반대하는 이들을 두고 “저 오크의 무리를 물리치자.”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사람들이야. <반지의 제왕>에는 잔인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오크의 목이 날아가고 그 배가 갈라지는 모습에서는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기보다 오히려 통쾌감을 느끼지.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야. 
 



나쁜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을 ‘오크’ 같은 괴물들로 딱지 부치고 그들을 물어뜯는 데에 능하단다. 그들을 신봉하는 세력들도 결국은 거기에 전염되고 오히려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더 활개치게 마련이야. 너도 아는 좋은 예가 바로 ‘빨갱이’나 ‘종북’이라는 낙인이겠다. 그 단어들이 어떤 의미로 활용돼 왔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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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포로가 돼 있는 사람들, 한 나라의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을 두고 적국의 스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의 행태를 너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자신에 반대하면 다 ‘빨갱이’로 보는 빨간칠 선글라스를 벗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말이야. 그래서 그들은 민주주의의 적이 되고 반대자가 되고 방해자가 된다. 바로 그들이 적대하는 사람들의 존엄성을 짓밟기 때문이야.



이건 그들에 저항하는 이들에게도 동시에 적용된다. 오히려 저쪽은 ‘빨갱이’로 수렴되지만 이쪽에서는 보다 다양한 갈라치기 언어가 존재하지. 정치란 기본적으로 싸움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상대방을 공격하는 용어야 당연히 존재하지만 문제는 그 기저에 “나는 정의, 나에 반대하는 편은 악”이라는 발상을 마찬가지로 깔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상대의 ‘가죽을 벗겨 버리겠다’거나 ‘먼저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되고, 사실상 실현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적폐를 궤멸’시키겠다는 식의 발언이 등장하게 되는 거야. 결국 이런 식의 외나무다리 뿔싸움은 양측 모두의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 한 나라와 사회적 파탄을 불러온다는 뜻이야. 투표할 때 꼭 눈여겨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위에서 아빠가 말한 것들은 결국 네 나름의 정치적 지향과 기준을 세우라는 얘기다. 그리고 거기에 맞게 네 선택을 정하라는 거야. 만약 그렇게 한다면 네 표가 어디로 가든 그건 사표(死票)가 아니다. 아빠나 너나 구 새누리당, 지금은 자해한국당 같은 인간들을 치 떨리게 싫어한다. 세상 없어도 그들의 재집권을 저지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하면 돼. 



하지만 네 정치적 지향은 민주당과 좀 다르고, 선호하는 후보도 따로 있는데 오로지 정권 교체만을 위해 네 표를 보탠다면 오히려


그게 사표가 된다. 또 네가 ‘정권교체’가 절대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임승차자’라고 비난하거나 ‘홍돼지 되면 책임질 거냐?’라고 을러서도 안돼. 그건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그들의 존엄함을 네 정치적 기호 때문에 유린하는 거니까. 



“될 사람을 밀자.”는 건 가장 우스운 슬로건이다. 하다못해 프로야구팀도 지조(?)를 지켜 응원을 보내고 ‘우승할 팀’을 응원하지 않는다. 하물며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대통령을 뽑고, 그들에게 보내는 정치적 지지의 한 표로서 ‘될 사람을 밀자’라는 말이 얼마나 우습고 또 폭력적일까. 



선거는 알다시피 국민의 참정권이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장이다. 누구를 뽑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구에게 국민의 지지가 더 많이 쏠리고, 그 정치적 비전에 동의하는 이의 세력이 큰가를 과시하는 장이기도 해. 그래서 득표율에 따라 국가가 선거 운동 자금을 보전해 주기도 하고 아예 ‘생까기도’ 하는 거란다.



네 표는 누구의 표만큼이나 소중하다. 그러니 네 정치적 결단으로 선택해라. 누가 안 될까 걱정해서 표를 던지는 것보다 누가 언젠가는 네게 이익이 되고 나라에 희망이 되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될지를 네 스스로 생각하고 파악하고 결정해라. 아빠는 그 결정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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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OREATECH 디자인공학과 4학년 이제하





산하


편집: 딴지일보 cocoa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2358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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