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며… – 수다피플

우선 적장인 홍준표에 대한 칭찬부터 해야겠다. 인간적으로는 밥맛 떨어지는 부류이지만 그것은 그만큼 그가 유능한 적장이었음을 의미한다. 만약 무능해서 우리 마음에 쏙 드는 짓만 골라서 했다면 이렇게까지 밉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홍준표는 대단히 영리하다. 이번 대선에서 자유당이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를 꿰뚫고 있었고,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503이 탄핵되던 순간만 하더라도 누구나 당시 새누리당이 이 정도 지지를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득표율 10%도 못미쳐 선거보조금을 못 받아 당이 파산하는 것이 아니냐고 다들 걱정하던 시기였다. 15%를 거뜬히 넘기고 25% 이상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꿈도 못 꾸던 것이 불과 두어 달 전 이야기이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당이 반성하고 혁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친박 핵심들을 날렸다. 누구나 그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어느 정도 선에서 친박들을 날리느냐를 놓고 잡음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새누리당의 떨어진 지지율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홍준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구 새누리당, 현 자유당을 기사회생케 했다. 그가 인지부조화 이론을 심도 있게 공부했는지 아니면 그냥 스스로 터득한 처세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박근혜 지지자들의 인지부조화 심리를 이용해 다시 박근혜 지지자들을 모으는 것이 현재의 득표전략으로서는 최선이라는 점을 파악했다. 탄핵 초반만 하더라도 춘향이 뽑은 줄 알았더니 향단이 뽑았다고 비아냥대던 그였지만 선거기간 중에 이런 태도는 돌변해 탄핵으로 박근혜는 이미 심판을 받았으니 이제 불쌍한 박근혜를 용서해주고 친박들도 복귀시키자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이런 민첩한 태도 전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태세전환을 못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결국 공사판에서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능력이 경이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부럽지는 않다.


아무튼 홍준표가 던지는 메세지는 분명했다. 박근혜 지지자들이여 죄책감이나 실망감 같은 것 가질 필요 없다. 당신들이 옳았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구속된 것은 민주노총, 전교조 등 좌파들이 치밀한 음모로 기획한 것이다. 최순실만 구속했으면 될 일인데 민주노총, 전교조의 선동에 놀아난 촛불집회 시위자들 때문에 박근혜까지 구속되었다. 내가 박근혜를 살리겠다. 박근혜 잡아넣은 것들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리겠다. 나를 지지하라. 사실 무근의 메세지이지만 원래 인지부조화가 사실을 받아들이는 프로세스를 연구하는 이론이 아니다. 거짓으로 판명된 잘못된 믿음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하다가 나온 이론이다. 반성을 외친 유승민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지만 인지부조화를 노리고 박근혜가 뭘 잘못했냐로 무대뽀식의 뻔뻔함을 들고나온 홍준표는 선방했다. 선방 정도가 아니라 탄핵 정국 초반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기적이라 부를 수 있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촛불집회 초창기만 해도 박근혜 반대 여론이 90%를 넘었다.


홍준표로서는 이 전략이 잘 먹혀들어서 18대 대선 때 박근혜를 지지한 사람들만 모두 모을 수 있어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고,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유당이 건재하다는 모습만 과시할 수 있어도 향후 국회에서 제1야당으로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처럼 사사건건 문재인 정부 흔들기를 시도해 국민들에게 무능한 세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면 차기 대선을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무너진 자유당을 복원할 수 있어서 만족이라는 코멘트가 이런 심경을 대변한다고 본다. 모사가로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유 정도의 실력은 충분하다. 다만 제갈량이나 사마의 급은 못 되는데 그건 좀 뒤에 설명할 것이다.


전략만 잘 짠 것이 아니다. 유세 기간 중에 보여준 전략 실행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돼지발정제 사건에 멘탈이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철면피는 명함도 못내밀 티타늄 초합금 면피을 두르고 티브이 토론에 나타나 심상정, 유승민은 대놓고 사퇴하라며 말도 안 섞고 안철수는 얼굴도 안 쳐다보고 말하고, 그나마 문재인만이 좀 상대해주다가 흑색선전하니까 맞받아서 돼지발정제 이야기 꺼내고 이런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건 정말 국보급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국보로 지정해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심지어 다음 토론회에서는 말도 안 섞겠다던 심상정을 기어이 자신과 대화하게 만드는 재주까지 보여주었다. 이번 대선 기간 중에 홍준표의 언행을 보고 만나면 죽빵을 날리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보고 포기했다. 저 철갑두른 면상을 때리면 내 손목만 부러질 것 같다.


어설픈 통합 시도 따위는 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확실하게 타깃을 잡은 뒤 주구장창 그들에게만 먹히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전략과 돼지 발정제, 장인 영감탱이 등의 악재가 터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철 멘탈로 홍준표는 자유당을 기사회생시켰다. 심지어 친박핵심이라는 누구도 이렇게 과감한 전략은 꿈도 꾸지 못했다. 가히 적벽대첩에서 조조가 겪은 수준의 패배를 거두고도 궤멸하지 않고 차기를 노릴 희망까지 달성했다는 점에서 전략가로서 홍준표의 능력은 인정할만 하다. 옛다 박수, 짝짝짝.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이후의 정국은 홍준표의 구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좀 희망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이번 대선 결과를 무척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당장은 국회에서 자유당 의원들이 사사건건 발목잡기를 시도하겠지만 다음 총선까지 3년만 잘 넘기면 된다.


당신들의 천국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소록도 병원장에 취임한 조백헌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한센인들을 독려해 소록도를 자활의 터전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는 한센인들을 설득시켜 농지가 부족한 소록도에 간척사업을 해서 농토를 확보할 계획을 실행한다. 한센인들은 스스로 무거운 돌을 나르며 바다에 던져넣었지만 언제 바다가 메워질지는 기약도 없다. 그러던 어느날 돌이 바다 위로 솟아올랐다. 한센인들도 감격하고 조백헌도 감격해서 만세를 외쳤지만 다음날 파도가 한 번 치자 솟아오른 돌들은 모조리 바다로 빠져버리고 다시 바다에는 물결만 나부낄 뿐이었다. 감격은 실망으로 바뀌고 조백헌에 대한 적개심으로 변했다. 그러나 간척사업 전문가들을 통해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바다 위에 돌이 올라왔다가 무너지고 올라왔다가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엉성했던 부분에 돌이 메워지고 나중에는 튼튼한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이후에도 몇 번 돌이 솟았다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되었고 나중에 기반이 튼튼해진 돌이 솟아오르자 더 이상 바다에 가라앉지 않았고 그 위에 흙을 덮어 간척사업이 진행되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은 단죄받지 않은 친일파들이 만들어놓은 적폐 투성이의 세상이었고 민주주의와 제대로 된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탄압받았다. 그러나 희망을 위한 꾸준한 싸움은 계속되었고 그 와중에 조봉암이라는 돌이 바다 위로 솟아 머리를 드러냈으나 곧바로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4.19를 통해 간척사업이 성공했나 싶었지만 만주국 장교 출신 박정희의 등장으로 희망은 다시 사라졌다. 5.18, 6월 항쟁을 통해 반쪽자리 민주정부이긴 하나 김영삼 정부도 들어섰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완성된 듯 했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주의는 탄탄한 기반을 갖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의 등장으로 수십 년에 걸친 민중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시민들의 다져진 민주역량은 끝내 박근혜를 몰아내고 문재인을 당선시켰다.


문재인이 당선되는 과정도 주목할만 하다. 김대중은 자력으로 당선 가능성이 없어서 박정희 세력인 김종필과 연합해야 했다. 노무현 역시 정몽준과 연대를 통해 간신히 이회창을 앞지를 수 있었다. 그 뒤 정동영, 문재인이 줄줄이 이명박, 박근혜에게 패배하고 이 과정에서 진보정당 후보들은 단일화 압력을 받고 후보 사퇴까지 하게 되었지만, 일정 수준의 득표력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는 연합이나 후보 단일화 없이 문재인이 당선되었다. 느리긴 하지만 꾸준히 진보적인 방향으로 국민들의 의식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역사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1848년 프랑스 혁명 실패를 배경으로 한다. 이미 1789년 프랑스인들은 루이 16세를 끌어내리고 목을 베었지만 다시 나폴레옹이 등장해 황제가 되고, 그의 몰락으로 다시 공화정이 되었다가 나폴레옹의 조카가 등장해 다시 황제가 되었다. 그를 몰아내기 위한 투쟁이 1848년 혁명이다. 이후의 역사도 순탄치 않다. 2차 대전으로 비시 괴뢰정부가 들어서고 드골이 나치 부역자를 숙청했지만 68혁명으로 물러나야 했다. 오늘날 가장 진보적인 국가의 하나로 인정받는 프랑스 민주주의가 정착하는데 거의 2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러고도 지금 르펜과 같은 극우파가 홍준표 수준의 득표력을 지니고 있다.


혁명이 되었든 변혁이 되었든, 걸출한 한 사람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것 뿐이고, 그 길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서는 것에는 인간의 자연수명을 훨씬 상회하는 긴 시간이 걸린다. 나중에 보면 역사의 과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희망은 먼 곳에 있는데 좀처럼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 이것을 못 견뎌 조급증이 생기고 김문수, 이재오와 같은 변절자가 생긴다.


하지만 희망적인 것은 변화가 느린만큼 한 번 그 변화가 정착되면 되돌리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아버지에게 배운 유신시절의 기법을 동원해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고문만 빼고 거의 모든 악폐가 부활했지만 18년을 버틴 아버지와 달리 고작해야 5년 임기도 채우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듯이 홍준표 지지자들은 대구, 경북의 노년층으로 축소되었다. 아직은 그들의 수가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이지만 다음 대선 때까지 상당수는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것이고 그 다음 대선이 되면 아마 절반도 채 안 남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층은 이제 더이상 자유당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미 이명박, 박근혜를 겪으며 소통없는 지도자, 독재적 리더십이 어떤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고 신물을 느꼈기 때문이다. 청소년 모의투표에서 홍준표는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박근혜가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려고 밀어부쳤던 이면에는 이처럼 축소되어가는 기반을 다시 확대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고 본다.

게다가 홍준표가 택한 전략은 이번 선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의 기회를 스스로 싹을 잘라버리는 근시안적인 전략이었다. 옛날 농사꾼들은 아무리 흉년이어도 종자는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당장 배고프다고 그걸 먹으면 다음해에는 아예 농사를 못 짓게 되니까. 그러나 홍준표는 소중한 종자를 아낌없이 털어먹었다. 돼지발정제, 장인 영감탱이 사건을 비롯해 토론회에서 홍이 보여준 아니면 말고 식의 막무가내 흑색선전을 국민들은 똑똑히 보았다. 저 인간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아무렇게나 일단 뱉어놓고 보는 집단이라는 것을 스스로 낱낱이 까발려보였다. 유승민처럼 반성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지금은 박살나더라도 다음을 노릴 수 있지만, 이제 모든 밑천을 다 보여주고, 친절하게도 선거 막판에 친박 핵심들의 징계까지 풀어주었으니 이제 자유당 지지자들은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접근해야 하는 대구, 경북 노년층만 남았다. 자유당은 그들과 수명을 함께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홍준표가 너무 고맙다. 만나면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 딥 키스를 해줄까? 평생 잊지 못하게?

다음 총선까지 한 3년간은 자유당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좀 골치아플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유당 의원들이라고 해봐야 조만간 사라질 퇴물 아니면 박근혜 후광으로 당선된 자생력 없는 얼간이들 뿐이다. 게다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시절과는 달리 지금 자유당에는 당시 이명박, 박근혜 같은 확실한 차기 주자도 없다. 홍준표 성격상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없다. 구심점 없는 자유당 의원들의 산발적 저항만 효과적으로 막아낼 방안을 궁리하고 약속한 대로 대한민국의 적폐세력들을 퇴출시키기 바란다. 그것만 열심히 해도 다음 대선은 훨씬 수월하게 치를 수 있을 것이며, 진보정당의 부상은 덤으로 찾아올 것이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2715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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