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새정부를 대하는 자세: 지지과 감시 사이 – 수다피플

1. 바뀐 것은 행정부의 수반 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작년부터 이어진 촛불집회, 탄핵으로 인한 대통령 보궐선거 등 일련의
난리통 끝에 정권이 교체되었다. 참으로 다이나믹 코리아이다. 이명박근혜의
압제를 끝내고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의 초석을 놓았지만, 초석만 놓았을 뿐 사실 세상이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세상은 적폐 기득권 세력으로 가득하다.

행정부, 그 중에서도
수반의 자리가 바뀌었을 뿐 선출직이 아닌 공무원들도 그대로다. 재벌 등의 경제권력, 부패한 언론권력, 부패한 검찰,
밖의 사회권력 등 선거로 바꿀 수 없는 세상의 권력구조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이와 같은 권력은 선거로
뽑지 않기 때문에, 보편적 시민의 상식에 역행한다고 하더라도 투표로 바꿀 수가 없다. 하나의 예로 재벌 일가의 경우, 죽을 때까지 해먹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종신세습 권력이다. 애초에 시민의 투표권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투표로 바꿀 수 있는 입법부의 상황을 살펴보자. 현재 시점의 정당 별 의석 수는 다음과 같다.

정당별 의석 수.jpg

이와 같은 의석 분포 상황에서 국회가 어떤 양상을 보일지 예측하려면
국회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회법 제85조의2(안건의
신속처리
)
 ① 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체계·자구심사를 위하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을 포함한다
)을 제2항에 따른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경우 의원은 재적의원 과반수가 서명한 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요구 동의
(이하 이 조에서신속처리안건지정동의라 한다)를 의장에게, 안건의 소관 위원회 소속 위원은 소관 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가 서명한 신속처리안건지정동의를 소관 위원회 위원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 이 경우 의장 또는 안건의
소관 위원회 위원장은 지체 없이 신속처리안건지정동의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또는 안건의 소관 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문구가 너무 복잡하니 간단하게 해석을 하자면, 세월호 진상조사, 검찰개혁, 재벌견제, 기본소득과 같이 자유한국당이 당연히 반대할 개혁입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면 재적의원의 5분의 3, 180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80석을 채우려면 자유한국당 빼놓고
다 더해야 된다. (정의당+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185)




지금까지 선거운동이 진행된 양상을 보면,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이
민주당 정권에 과연 협조적일까?

문모닝.JPG

다음 총선은 현정부 출범 시점(2017 5)으로부터 3년 후(2020 4)이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2003 2)부터 탄핵안 가결(2004 3)까지 1 1개월 걸렸음을 감안해보면, 3년은 현정권을 요단강으로 보내기에 지나치게
충분한 시간이다. 만약 3년 동안 개혁입법을 못한다면, 임기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특성 상, 남은 2년은 더욱 가망이 없다.


2. 노무현과 노사모

노무현이 당선되던 날. 노사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노무현이 무려당선자
신분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 왔다. 앞으로 무얼 할 생각이냐는 노무현 당선자의 말에 사람들은감시, 감시
외쳤다. 당신이 권력을 잡도록 만들었으니 우리는 이제 당신을 감시하겠다는 뜻이었다.

노무현은 이에 대해 서운하다고 화답을 했다. 우리의 힘은 아직 약하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개혁을 방해하고 싶어하는
세력의 힘은 아직 강한데, 우리가 힘을 합쳐도 많이 모자른데 당신들은 감시를 할 생각이냐고 다시 물었다. (후략)

<정치부장 물뚝심송의 페이스북에서 인용>



서운해하던 노무현의 탄핵안은 1 1개월만에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3. 급하게 처리할 일들은 산더미이다.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회의 세력분포 상황에서 새로운 정부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줄잡아도 산더미이다.

 급하게 처리할 과제들.jpg

대충 잡아도 언젠가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니라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이 정도이다뿐만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취임하자마자 서프라이즈로 깜짝 놀랄 박근혜의 빅똥도 치워야 할 것이다.

적폐를 청산하고 사람살기 좋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라는 추상적인 명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의견 일치를 이루었으나세부적인 과업에 대해서는 각자의 입장이 모두 다를 것이다세부적으로 보면 어떤 정책이 우선순위인지어떤 과업이 가장 급하게 처리되어야 하는지 공통된 합의안은 만들어진 적이 없다위 그림에 포함되지 않는 과제가 최우선순위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그만큼 우리의 생각은 다양하다.

 

4. 대통령은 반드시 당신을 실망시킬 것이다.

나열된 수많은 사안들에 있어서 대통령이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선택만 할 리는 없다다시 말해대통령이 내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은 행동을 할 확률은 100%이다모든 세부 사항에 있어서 나와 동일한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가? (만약 기호1번에 투표했다면핵심을 이루는 가치관에 있어서 나와 다른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한 표를 준 것이 아닌가?

핵심적인 가치관에 있어서 나와 상충하는 사람과 연인이 되거나 결혼을 하는 경우삶이 괴로워진다그렇기 때문에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핵심 가치관의 충돌이 발견된 사람과는 더 이상 관계를 발전시키지 않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습성이다같은 이치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진 기호2번에게는 표를 주지 않은 것이 아닌가모든 연인들은 연인이 된 이후에 지금까지는 몰랐던 가치관의 충돌을 발견하게 된다이건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다.

무슨 문제가 될지는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겠지만새로운 대통령과 나의 가치관 간에 불일치를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다시 말해대통령이 당신을 실망시키는 순간은 100% 확률로 찾아올 것이다.

 

5. 비관론은 실체적 힘을 갖는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똥을 치우다가 진보보수 양쪽에서 두들겨 맞은 새로운 정권은 처절하게 실패하고이 실패를 바탕으로 다음은 자유한국당류의 당이 다시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비관론도 존재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비관론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후만약 그런 사태가 발생해도 상처받거나 충격 받지 않으려는 마음의 자기방어 기제이다만약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생각은 실체적인 힘을 가지고 비관론이 그린대로 현실을 만들어 낸다머리 속으로 백곰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선명하게 백곰이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포스트아포칼립스적 비관론은 노무현의 처절한 실패뒤이은 MB정권의 탄생으로부터 비롯된 상처 때문이겠으나이와 같은 비관론은 참여자라기보다는 관찰자 혹은 평가자의 태도에 기반해 있다.

제점수는요.jpg


6. 문재인과 노무현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문재인에게서 노무현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그러나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보면 두 사람의 캐릭터는 완전히 다르다노무현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었으며한편으로 참으로 아스트랄한 캐릭터였다그의 아스트랄한 캐릭터처럼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의 지지율은 올랐다 내렸다 극적인 춤을 췄다.

16대 대선 노무현 지지율.jpg

19대 대선에서는 16대보다 훨씬 많은 온갖 변수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난리도 아니었지만문재인의 지지율 추이에서는 아스트랄함을 찾아볼 수 없다.

19대 대선 문재인 지지율.jpg

문재인은 노무현과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는 못 가졌지만아스트랄함과도 거리가 먼 캐릭터이다그가 앞으로 보여줄 모습은 노무현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굳이 예전의 실패로부터 비롯된 무의식의 그림자를 현재에 대입할 필요가 있을까?


7. 촛불집회… 또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청산의 대상인 적폐 기득권 세력은 현재의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럼 안돼라고 해봐야 소용없다이건 자연의 섭리다모든 것이 그대로이고 달랑 행정부 수반만 바뀐 상황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감시자 혹은 관찰자의 태도를 취한다면최악의 경우 노무현 탄핵 시즌2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그쯤 되면 세계인들은 한국인을 탄핵중독자로 보게 될 것이다.

(가장 최근의 전직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대통령은 왕이 아니라서 법에 정해진 것만 할 수 있다이것저것 해 보다가 안되면 또다시 시민에게 읍소를 할지도 모른다지구는 둥근 것과 같이 당연한 얘기지만 세월호 진상조사검찰개혁재벌견제기본소득과 같은 개혁입법에 자유한국당은 반대할 것이다이때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촛불집회가 일어나면겁먹은 국민의당바른정당은 개혁입법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게 되지 않을까?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그러나 5.18민주화운동이나 6월 항쟁만큼 처절할까?

5-horz.jpg

(왼쪽 사진부터)

– 5.18민주화운동 중 전남도청 앞에 운집한 시위대(1980)

– 6월 항쟁 중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시위대(1987)


2017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최소한 촛불집회에 가서 총을 맞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없다지금은 여러모로 비판 받는 386세대이지만그들은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에 나섰다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국민이 직접 투표하여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민주주의를 되찾게 되었다민주주의는 원래부터 본질적으로 피곤한 것이다.

 

8. 지지과 감시 사이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정치인과 시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왕과 백성이건 아니다.

나라_다_팔아먹어도_새누리당.jpg

<’뉴스타파에서 캡쳐>

이런 것은 정치적 의견이라기보다는 신앙의 영역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재주 넘는 곰과 관찰자 혹은 감시자의 관계가 온당할까스스로의 정치적 정체성을 진보라고 여기는 시민들이 쉽사리 ‘나는 문재인 정권의 편에 서겠다라는 입장을 내놓지 못한 이유를 기호3번의 발언에서 유추할 수 있다.

(문재인 후보가 집권하면) 5년 동안 홍위병이 날뛰는 세상이 될 것 

*홍위병: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의 이념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며 폭력을 일삼은 극단주의 집단

 

내가 홍위병이 되고 말까봐, 더 나아가서는 나라를 팔아먹어도 민주당을 부르짖는 광신도가 되고 말까봐 두려운 것이 그 이유는 아닐까? 어디까지 지지해 줘야 하고, 어디까지 감시 해야 하는가? 기호3번의 예언대로 문빠는 홍위병이 되고 말 것인가?

응원과 견제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것은 한국 정치사의 새로운 실험이 될 것이다. 역사 상 이런 상황은 처음 맞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 균형점을 못 찾았기 때문에, 홍위병이
될 바에야 감시자가 되고 말겠다는 스탠스는 구더기 무서우니 장을 담그지 말자는 소극성의 표현은 아닐까? (홍위병보다는
감시자가 뽀대 나기도 하고) 지금까지 이와 같은 균형점을 찾아야 할 역사적 니즈가 없었으니, 지금부터 균형점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스탠스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부터 한국의 역사가
상식을 역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2017년의 촛불집회는 언젠가 교과서에 기록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응원과 견제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새로운 정치적 실험도 언젠가 교과서에 기록될 것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려본 경험이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대통령에게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마법적 힘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2003년의
우리는 그것을 몰랐었다. 대통령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도 아니고 구원자도 아니다. 지금부터 펼쳐질 정치상황은 역사적으로 경험해 본적이 없는 새로운 판이므로 뭐가 정답일지 지금 시점에 아는 사람은
없다. 앞으로 만들 역사는 우리가 처음으로 만드는 생방송이 될 것이다.

 


Naive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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