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잡담… 암연소혼장… – 수다피플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무척 기쁘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앞으로는 글쓰기를 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다.

나는 괴퍅한 성격의 아버지 밑에서 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중학교 때 도스토엡스키의 까라마조프 형제들을 읽고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의 아버지 표도르의 성격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도스토엡스키가 우리 아버지를 만나서 뒷조사를 한 것은 아닌가 의문을 품을 정도로 아버지와 싱크로율이 높았다. 이때 나는 문학의 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내 평생에 이렇게 한 가지 뚜렷한 목표를 품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탓에 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대형 시위에 참여하고 나중에는 전교조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학교에서 내가 주도해서 운동장 집회를 연 적이 한 번 있었고, 내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벌인 적도 한 번 있었다. 교장은 두 차례 모두 내가 기획했다고 믿었지만, 내가 기획했으면 두 번째 집회도 그렇게 허접하게 안 했다. 교장에게 내 능력을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대학 2학년 때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의 시위대에 맞아죽는 사건이 있었고, 그해 상반기는 길바닥에서 지내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일보에 실린 김지하의 논설과 외대 학생들이 정원식 총리에게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봉변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91년 투쟁의 열기는 빠르게 식었다. 이 엄청난 상실감 때문에 방황하면서 개차반으로 생활하다가 군대에 갔고, 제대한 다음부터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무렵부터 기업체에서 토익 성적을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영어 실력을 늘리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내가 근래에 올린 ‘흙수저를 위한 영어공부법’은 이 무렵 맨땅에 헤딩하기로 기를 쓰며 영어공부를 했던 경험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96년 한총련 출범식이 연세대에서 열렸다. 동기들이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나는 도서관행을 택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시위 문화가 바뀌어서 한총련 출범식은 재미있게 노는 행사 정도로 다들 생각했지 무슨 정권 타도를 위한 투쟁의 장으로 여긴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동기들도 가서 놀자고 했지 가서 싸우자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행사 이틀째부터 김영삼 정권은 연세대 정문을 봉쇄하고 헬기를 동원해 최루액을 뿌리기 시작했다. 박근혜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본인 지적 역량이 국정 난맥상의 원인이라 생각은 안 하고 엉뚱하게 한총련 학생들을 적으로 지목한 것이다. 90년대 초반의 치열한 가두시위를 경험한 내 또래 학번들은 전경의 침탈이 시작되자 대부분 샛길을 통해 빠져나왔는데 그런 경험이 처음인 저학년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빠져나올 기회를 놓치고 연세대에 완전히 봉쇄되었다. 내가 도서관 행을 택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연세대 앞에 가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전경들과 싸웠지만 압도적인 물리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아는 1,2학년 후배 가운데 50여 명이 구속되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당하게 되었다.


사실 전경들과 싸우는 일은 주중 행사나 다름없는 1,2 학년 시절을 보낸 탓에 전경들이 공격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사건 자체보다 내가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내 일 아니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다는 태도, 내가 사상적으로는 현재 정의당과 가장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정의당 당원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는 그때 소위 PD계열이 보여준 태도 때문이다. 그들은 한총련 노선에는 원래 문제가 많았다는 식으로만 말하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공안당국에서 말하는 주사파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냥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여서 춤추고 율동하고 논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정의당 당직자들 상당수는 그때 PD계열 사람들이다. 나는 처음부터 주체사상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문제로 선배들과 수많은 논쟁을 했던 사람이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배신감을 느낀 경험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통진당 해산 사태 때 나의 사상은 이미 주체사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정도였지만 통진당이 해산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들은 나로 하여금 96년 연세대 사태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나는 아마 죽는 날까지 정의당(나중에 또 어떤 이름으로 바뀌든) 당원이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당시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한총련 학생들을 빨갱이, 주사파로 매도하는 것에 몰두했다. 심지어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폭력시위는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했다. 먼저 헬기를 앞세우고 진입한 쪽은 경찰들이었다는 사실은 눈 감으면서. 오직 추미애 의원 한 사람만이 연행과정에서 자행된 경찰의 여학생들에 대한 성폭력 사례를 국회에서 낭독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때 나는 나중에 추미애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 무급 선거운동원으로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 수행하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추의원이 가담하는 것을 보고 결심을 깼다.


그 해 12월 노동법 날치기 사태가 벌어지면서 나는 영어공부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시 소설을 쓰자고 결심했다. 나는 소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했다. 당시 내게 있어서 소설은 예술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 찌라시였다. 여러 작가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문장 수업을 했는데 공통적으로 지적받는 것이 소설에 대한 태도 문제였다. 아이디어 좋고 스토리 진행이 흥미진진하나 문장의 예술성이 떨어지고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이 순수하지 않다. 특히 이동하 선생님의 지적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사람들 앞에서 나의 문장들 몇 개를 지적하면서, 이 친구가 문장력이 떨어져서 이런 식으로 썼다면 별 문제가 아니다. 그건 자꾸 쓰다보면 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친구의 어떤 예술관 때문에 이런 문장을 일부러 구사한 것이라면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너무 정확히 급소를 찔렀다. 나는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중선동을 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흥미진진한 스토리 진행은 필수적이며, 기존 작가들의 이른바 밀도 높은 문장은 의식적으로 거부해왔다. 문장 읽기가 어려우면 사람들은 끝까지 안 읽을 테니까.


그 뒤부터는 문장 자체에도 힘을 쏟았다. 그럭저럭 공부해서 어느덧 등단을 준비해도 되겠다는 평가를 주위 사람들에게 받을 무렵, 두 가지 사건이 터졌다. 아버지가 만성 신부전증으로 쓰러지면서 당시 경제 여건상 병원비 감당에 허덕일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 첫 번째고, 둘째가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이때 나는 내 글쓰기의 한계를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나는 부조리한 현실에 시달릴수록 글쓰기가 잘 되는 스타일이지만 반대로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게 되면 오히려 글쓰기가 막혔다. 이제 굳이 내가 고발하지 않아도 정치적으로 이런저런 문제들이 해결될 텐데 무슨 이야기거리를 쓰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글쓰기도 포기하게 되었다.


영웅문 2부에 등장하는 양과와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아내와 생이별한 절망감에 암연소혼장이라는 절정 무공을 창안한 양과. 이 암연소혼장은 절망감에 휘두를 때면 천하무적이지만 그런 절망을 느끼지 못하면 별 위력이 없다. 그래서 천성이 개구장이인 주백통은 암연소혼장을 익히려 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양과도 16년만에 아내 소용녀(송승헌의 부인인 유역비가 2006년 신조협려 시리즈에서 소용녀 역할을 맡았으나 원작의 이미지에 턱없이 모자란다. 원작의 소용녀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는 세상에 없다)를 만나고 절망감이 사라지자 암연소혼장의 위력이 떨어져 적수인 금륜법왕에게 죽음을 당할 위기까지 몰린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이 찾아온 순간 다시 암연소혼장은 위력을 되찾게 된다.


나의 글쓰기가 꼭 이런 패턴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하루에도 수 십개씩 쏟아지던 아이디어들이 신기할 정도로 고갈되어 나는 설령 로또가 당첨되어 경제난이 극복되고 하루 종일 앉아서 글쓰기를 할 형편이 되더라도 정작 쓸 이야깃거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문장수련을 하며 향상된 나의 언어구사력에 만족하며 큰 아쉬움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사실 소설가 돼봐야 몇 명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의 등장은 나로 하여금 충분히 절망감에 사로잡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력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정 무서워서 불의와 맞서 싸우지 못하겠으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유언을 받들어 인터넷 글쓰기를 시작했다. 여기저기 거치다가 단지일보에도 발을 디디게 되었고, 뭐 딱히 마음에 드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내가 무슨 필진 대우 받자고 시작한 글쓰기도 아닌 탓에 그런 것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중간중간 먹고 살기 힘들 때는 글을 못 올리기도 했고, 가장 절망감에 시달릴 때는 그냥 다른 나라로 이민이라도 갈까 생각도 했다. 생활고 때문에 시작한 비계 일이지만 이제는 나름 중간 수준의 기술자로 대우 받고 있으니 외국 나가도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러던 차에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원칙을 세웠다. 쉬는 날에는 무조건 한 편 이상의 글을 올린다. 일하는 날은 솔직히 피곤해서 글쓰기를 하기 힘들고 쉬는 날은 밀린 잠 자고 이런 거 저런 거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쉬는 날 눈을 뜨면 무조건 글을 써서 올리자. 지난 두 달 간 내가 부쩍 글을 많이 올린 것은 그만큼 내가 쉬는 날이 많았다는 뜻이고, 지금도 돈 못 벌어서 환장하겠다. 아무튼 그렇게 탄핵 정국 동안 미미한 역할이지만 현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문재인이 당선되자, 이제 또 글쓰기가 어려워지겠구나 하는 걱정이 든다. 내 글쓰기의 장점은 무자비한 독설이라고 나름 판단하는데 홍준표를 향해서야 얼마든지 날릴 수 있지만 문재인에게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고작해야 나의 활발한 인터넷 글쓰기를 위해 문재인이 초심을 잃고 홍준표 수준이 되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참으로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나는 오랜 세월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고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적폐 중의 하나가 줄세우기 식 교육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부터 올리는 사교육 시리즈 역시 그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거 다 마치고 나면 앞으로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어제 한 번 일베를 가봤는데 거기 가니까 다시 피가 끓는 느낌이 들었다.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맞싸울 떨거지들이 그리 많이 모여 있다는 점이 흥미를 부른다. 어쩌면 앞으로는 딴지보다 일베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지는 않을지 그런 생각도 들고, 아무튼 조금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사실이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3166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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