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되기 전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 미리(다시)보기? – 수다피플

알버트 피니, 로렌 버콜, 마린 발삼, 잉그리드 버그만, 숀 코네리, 장 피에르 카셀, 앤소니 퍼킨스, 리차드 위드마크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이 40여년이 지난 2017년 다시 리메이크 된다고 한다. 당대에도  헐리웃통신에 따르면 조니 뎁, 미셜 파이퍼등의 헐리웃 스타들이 출연을 확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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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인 애거사 크리스티, Dame Agatha Christie,  1890년 9월 15일~1976년1월 12일)는 74년 영화를 본 뒤 만족스럽다는 말을 전하며 을 나섰다 한다. 2년 뒤인 1976년 향년 85세로 생을 마감했다.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렸던 애거사 크리스티는 그의 첫 작품이 출간된 1920년 이후로 죽은 해인 1976년까지 거의 매년 추리소설을 출간했다. 70여권에 달하는 그녀의 추리소설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지금도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코난 도일과 더불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추리소설가이다. 그 중에서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은 후대의 작가나 영화인들에게 여전히 영감을 주었다.

74년도에도 그렇고 2017년에도 헐리웃 스타들이 출연을 원했을까. 무엇이 헐리웃 스타들을 이 오리엔트특급 열차에 승차하기글 원하는 것일까. 추리소설의 백미인 완전범죄를 노린 범인과 탐정과의 두뇌 싸움의 재미 때문에? 아니면 영화에서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오리엔트특급 열차”에 올랐다.

영화에는 사람이 나온다. 사람이 나오지 않는 영화라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이 나온다. 어쨌거나 영화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스크린 안에서 배우는 관객대신 새로운 상황, 사건을 만난다. 관객은 멀리서 구경하며 자신을 대입해 보기도 한다. 배우의 경험이 온전히 자신의 경험으로 와 닿을 때, 또 비슷한 경험을 미리 겪은 관객은 스크린 안의 배우가 내린 판단이 자신과 같으면 안도감과 위안을 받는다. 관객 뿐만 아니라 원작자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독자에게 전달하려던 의도가 명확히 전달되면 만족한다. 글보다 영화가 더 명확하고 간명하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런점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도 단 한 장면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 아닐까 해서 찾아낸 결정적 장면.

결정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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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에르퀼 뿌아로가 용의자들을 신문한 뒤 인을 찾아내기에 앞서 단서가 된 손수건, 칼, 단추 등을 탁자에 내려 놓는 장면이다.  배우들이 입고 있는 의상을 보면 1930년대 의상이다. 시대 고증을 잘 한 것일까. 어떻게 1930년대의 의상만을 정확히 입고 있을까.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유행하던 등산복 패션을 생각해보라. 모두들 등산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당신이 정장차림으로 열차나 지하철에 탔다고 해서 당신이 2000년대 초반 사람이 아닌것이 아니듯이, 이 장면은 처음부터 30년대의 의상만으로 애거사 크리스티가 배역들에게 입혀준 것이다. 그러니까 애거사 크리스티는 정확히 1930년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또 이상한 점은, 탐정 뿌아로를 중심으로 좌측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열차 승무원, 군인, 비서, 의사, 가정부, 집사가 배치되어 있다. 우측으로는 자본가와 귀족, 그의 하녀가 있다. 서로 신분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앉은 것은 아닐까. 아니다. 이것 또한 애거사 크리스티가 배치한 것이다. 좌측의 사람들은 세습되지 않는 직업을 가졌으며, 당시에는 여성이어야 하는 직업도 있다. 그런데 1930년대에는 여성들이 하던 일을 남성이 하고 있다. 의상은 정확히 30년대인데 직업은 또 맞지 않다. 그리고 30년대에 어울리는 여성은 가정부와 알버트너트대령(숀 코네리)와 사랑하는 사이인 미혼자 데벤헴 뿐이다. 그것도 역시 애거사의 의도대로 배치된 것이다. 이제 애거사가 제시해 준 단서로 애거사 크리스티가 오리엔트특급살인사건에서 독자나 관객에게 하고싶은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볼 차례다.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을 통해서 애거사 크리스티가 말하고 싶었던 국의 1930년대를 알아보고자 한다. 단서는 의상과 직업이다. 1930년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앞선 두 시대를 알아야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 패션으로 시대를 말하다

테일코트.jpg프록코트2.jpg턱시도.gif

테일코트, 프록코트, 지금의 턱시도로 변해왔다. 테일코트는 군복에서 생활 예복으로 되었다. 테일코트는 상의와 하의의 옷감이 달라야 했다. 같은 옷감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 입는 옷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던 것이 상하가 같은 옷감으로 된 것이 프록코트다. 프록코트는 산업혁명이후 사업가와 은행을 소유한 자본가들에게 선호되었다. 활동적인 사업가들은 이 예복이 불편했다. 그래서 집에서 편하게 입는 모닝코트와 라운지 슈트풍이 선호되었다. 편안하면서도 예의를 벗어나지 않는 옷이 등장하게 된 것이 턱시도다. 미국 뉴욕출신의 사업가가 자신의 사교모임인 턱시도 파크(Tuxedo Park)에서 처음 입고간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짧은 슈트의 이름이 턱시도가 되었다.

남성들의 의복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의복도 착용의 편의성으로 변화하게 되었는데, 그 변화가 매우 흥미롭고 격동적으로 변화했다.

빅토리아시대(1837년 ~1901년)의 의상 : 예의를 입다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기간을 빅토리아 시대라한다. 여왕의 통치기간을 역사적 시대로 따로 정의하는 것은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절정기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났으며, 기업가들과 그 기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상당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산업과 상업의 발달로 그들 기업가와 자본가들의 옷에도 일련의 변화가 필요했다. 상대방에게 신뢰있는 사람으로 보여주어야 했으며, 자신의 기업이 잘 규율된 군대와 같다는 인상을 자본가들에게 심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인상들은 정직한 모습임을 말해 줄 태도와 그 태도에 필요한 옷이 필요했다.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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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놀린, 버슬, 코르셋>

여성들의 의상은 남편의 부를 의미했다. 여성들의 의상은 아름다웠지만, 그 댓가는 고통이었다. 고통의 주범은 1800년대 부터 입어 온 코르셋이 여전히 여성의 몸을 제약했다. 가느다란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려 여성들은 코르셋으로 몸을 조였다. 심한 경우 여성의 갈비뼈가 부러져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다는 말이 나돌정도로 코르셋은 여전히 여성들의 아름다움과 고통의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옷에 자신의 몸을 맞추던 시대였다.

에드워드 시대(1901 ~1914) : 예의 같은 소리하네!, 자유와 실용을 입다.

예술과 스포츠의 시대이자 산업혁명의 황금기였던 에드워드 시대에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양복 틀이 만들어지던 때이다. 젊잖은 것 보다는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옷이 선호 되었다. 라운지 슈트와 체스트 필드 코트가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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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불편하게 했던 코르셋을 벗어냈지만 여전히 새로운 불편함을 입어야 했는데, 호불스커트다. 치마가 점점 좁아져 발목 부근에 이르러서는 겨우 한 발자국의 보폭으로 걸음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호불 스커트를 영국식 전족(발을 작게 만드는 중국식 풍습)이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여성들은 호불치마의 끝자락을 주름과 트임으로 움직임이 자유로울수 있었다. 에드워드 시대에 남성들이 스포츠에 빠져든 것 처럼 여성들의 스포츠 활동도 활발해졌다. 걷기, 등산, 자전거타기, 승마, 테니스 등의 운동을 즐기기 시작했으며 불편했던 옷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옷에의한 제약과 옷에대한 해방의 움직임이 공존하던 시대였다.

1차세계대전

옷 자체가 예의였고 옷에 사람의 몸을 끼워 맞춰 예의 있는 몸으로 만들어야 했던 지난 세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상류사회 여성의 의복이 하층민 여성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1차대전을 거치며 하층민 여성이 자신들의 옷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1차대전시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독립 여성 노동자 때문이었다.

데이지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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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물공장의 어린이 노동자>

산업혁명이후 여성들은 직물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특히나 가장이 부양하지 않는 가정에서는 어린아이들까지 공장에서 일했다. 가정부보다 조금 더 임금이 높았고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공장으로 여성들은 몰려들었다. 하지만 18세에서 20세까지가 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20세가 넘는 여성들은 실직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영국 정부와 사회환경은 나이 든 여성은 결혼해 가정으로 돌아가야만했다. 그런데 1차대전으로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전쟁터로 떠난 남성들의 일자리를 20세가 넘은 여성들이 채우게 됐다.

처음에 여성들은 남성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영국정부에 의해 제한적이었다. 처음에는 군병원 간호사로 일하며 여성들의 노동력이 인정받게 되었다. 간호사로 인정받게 된 여성의 노동력은 다양한 직업으로 넓혀갔다. 열차 승무원, 교사, 행정부의 사무직, 혹은 기업의 비서로 채용되었다. 여성의 손가락으로 누르기 힘들었던 기존의 타자기를 대체해 1920년대 전동타자기가 보급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쟁중에 군수물자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이 필요해 군수공장에까지 여성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 가지 관습을 제거했는데 여성이 혼자 다닐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남성 가장이 대동하지 않으면 어느 곳도 갈 수 없었지만 이제 여성은 일터로 가야했기 때문에 혼자서 다닐 수 있게 됐다.

20세 이상이면 가정으로 돌아가야했다. 그렇지 않으려면 탄광에서 저임금의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런데 전쟁으로 부족해진 남성의 노동력때문에 여성들은 영국정부와 기업의 필요에따라 30세로 연령이 상향되었다. 각 가정에서는 여전히 20세 이상이 되면 결혼을 통해 남성 가장에 생활을 의지하지 않아도 됐다. 여전히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정을 부양하기는 했지만 또한 가정에서 독립해 혼자 살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30세 이하의 독립 여성 노동자들은 새로운 패션의 소비층으로 대두되게 된다. 남성 임금을 그대로 받았기 때문에 이들은 중류층으로 편입되게 된다. 전쟁 이전에는 11실링 7펜스 정도의 급료였던 것이 남성의 일을 하게 되면서 2파운드 5실링으로 스무배가 넘는 소득을 가져가게 됐던 것이다. 중류층 여성들의 값비싼 옷이 그들에게 팔리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가장 각광받던 의류생산자가 샤넬이었다. 새로이 생산되는 나일론 옷감이 몸에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듯한 샤넬의 옷은 자유와 세련됨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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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코코 샤넬의 저지수트(jersey suit)>


1930년, 전쟁의 끝,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전장터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영국정부는 다시 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 보내려 했다. 대다수의 여성들도 그것을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그것이 애거사 크리스티의 『 오리엔트특급열차 살인사건』의 배경이다. 다시 결정적 장면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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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의 승무원과 집사, 비서는 다시 남성이 일하게 됐다. 여성 둘은 돌아온 군인과의 결혼을 하려하고, 다시 저임금 가정부로의 일로 돌아가야했다. 이 장면의 이야기다.

범인은 누구인가

추리영화는 관객의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단서는 영화 안 주인공인 탐정게게만 제시되기 때문이다. 관객은 탐정의 특별한 관찰력과 재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그런데도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독자나 관객에게 매우 빈약하게 주어진 단서로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해결은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감정으로 일어난 사건을 날카로운 이성으로 정의를 세운것이다. 이것이 추리영화가 주는 재미이다.

영화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탐정 뿌와로에게 주어진 단서였기에 그만이 아는 시간적 정황으로 사건을 꿰어 맞춰 해결한다. 또 미국인 사업가 래체트가 데이지 암스트롱을 납치살해 했다는 정확한 증거도 제하지 않는다. 이미 살인자로 확정한 뒤에 암스트롱가와 관계가 있는 승객들에게 살해당할 뿐이다. 그렇다면 애거사 크리스티의 머리 속의 데이지와 래체트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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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을 제약했던 코르셋 같은 사회환경일 수도 있으며 어린 딸(데이지)을 직물공장으로 보낸 능력없는 가장이며, 전쟁 이후 다시 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려 했던 영국정부와 돌아 온 남성의 결합된 이미지 일 수도 있다. 그것이 애거사 크리스티가 말하고 싶은 진짜 범인은 아닐까라는 추리의 결론이다. 옛 시대로의 회귀를 거부하려던 1930년대 여성들의 목소리가 살인의 동기 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가정으로, 지난 세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미 자본가들은 여성의 노동력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범인인지의 최종적인 결정권을 새로운 자본가인 열차 사장에게 맡긴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1974년의 상황도 1930년대와 비슷하게 격동의 시기였다. 중동전쟁에 따른 석유파동과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닉슨이 중국을 방문해 냉전의 해빙이 시작되던 세계 정치, 경제의 격변기였다. 지금은 어떤가. 미국에서는 인종주의와 여성비하의 상징인 트럼프가 집권한 시기이다. 어쩌면 그래서 헐리웃은 다시 “오리엔트특급열차”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그 열차에서 구 시대를 끝장내 버리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영화가 될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히스패닉계 배우와 아프리카계 배우가 출연하는 것 같기는 하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었다. 였었다라는 말이 무척 달갑다. 구 시대로 회귀하려던, 그런 낌새를 보이던 정권이 몰락했다. 그리고 그 몰락은 오리엔트 특급의 승객들에게 쥐어진 증오의 칼이 아니라, 정의를 원하는 촛불이었다. 증오의 칼이 아닌 촛불을 든 것처럼 이제 한국의 모든 갈등은 광장에 모여 함께 든 촛불의 마음과 같이 해결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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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

코르셋에서 펑크까지, 엘리자베스 루즈

현대패션 100년 1900 – 2000 교문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2338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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