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강해한다는 것 – 수다피플

‘도올의 로마서 강해’(이하 로마서 강해)를 읽고 있다. 정가 28,000원에다가 책 한 권 값에 해당하는 배송료를 내고 일주일가량을 기다린 끝에 받아 볼 수 있었다.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어렵게(?) 구한 책이다 보니 대충 읽고 책장에 꽂아 놓아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를 평소보다 더하게 된다.

 

도올 선생의 이전 저서인 ‘기독교 성서의 이해’를 읽고 나서 당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성서와 기독교에 대한 사적 관심을 — 신학박사 학위가 없다는 의미에서 — 전문 신학자가 아닌 사람, 즉 아마추어가 자신의 위치와 관점에서 적당히 써 내려간 책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가 가진 도올에 대한 거부 정서만 없다면 이 책은 신학대학에서 교과서로 사용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학계에서 나름 활발한 활동을 하는 신학자들의 저작들을 많이 보았지만, 기독교 성서 전반을 이만큼 폭넓게, 입체적으로, 그리고 매우 깊게 다룬 책을 그전까지 보지 못했었다. 배울 때는 개론부터 배우지만, 학자가 책을 쓸 때는 반대로 거의 가장 마지막에, 자신의 학문이 원숙해졌을 때 쓰는 것이 개론이다. 한국엔 아직 이런 수준의 개론서를 쓸 만큼의 경지에 이른 신학자가 정말로 없는 것일까?

 

로마서 강해를 읽고 있는 지금 그때 느꼈던 충격이 새삼 떠오른다. 도올이 성서와 기독교 신앙에 관한 책을 냈다면 이는 그 내용과 그의 주장에 대한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무조건 읽어야 함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본서의 분량은 대략 500페이지 정도인데, 로마서 본문에 관한 강해가 시작되는 부분은 책의 중간 부분에 해당하는 259페이지부터다. 그 전까지는 ‘구약의 세계, 신약의 세계, 나의 탐색역정’이란 부제를 가진 입오(入悟)장이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일종의 배경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만 책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다.

 

구약의 정신사적 원점이 바벨론 유수라는 그의 설명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스라엘(엄밀히는 남유다 왕국)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됨으로써 멸망하고 그곳에 있던 많은 유대인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데, 이 사건이 구약세계의 원점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관해 기술하고 있는 대목들은? 다윗과 솔로몬, 그 이후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파괴되기까지의 역사는? 모세가 등장하는 출애굽 이야기는? 더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는 것이고, 천지창조는 어떻게 되는가?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런 이야기들은 민담 수준의 이야기이거나 사실과 판타지, 사실과 신화, 사실과 해석, 희망, 바람 등이 마구 뒤섞인 유사(遺事) 수준의 기록일 뿐이란 것이다. 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는 집단에겐 유의미한 것이나, 이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도올은 이부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몽이 건넌 엄리대수가 흑룡강성의 송화강 상류는 눈강 어드메라고 비정할 수 있다는데, 그곳은 가서 주몽의 궤적을 추적하는 고고학적 발굴을 감행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찌하여 모세의 도홍해는 역사적 사실로만 믿으려하는지 나는 그 어리석은 속셈을 헤아릴 길 없다.”

 

바벨론 유수가 구약의 정신사적 원점인 것은 그것이 증거를 통해 연대를 특정할 수 있는 확실한 사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방금 언급한 민담과 유사가 채록되고 이른바 구약이라는 그들의 아이덴티티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과정과 설명은 도올의 본서를 읽어보길 바란다. 내가 이것을 주목할 만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성서 강해가 한결 편해지고, 그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이 흔히 하나님의 뜻이라 부르는 성서의 본래 메시지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도올 선생은 로마서 강해와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내용의 배경사를 로마서 강해란 제목의 책에 절반의 분량을 할애하면서 쓰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른바 꼴통보수뿐 아니라 절대다수의 보수 기독교에서 철석같이 사실 그 자체로 믿고 있는 기록을 민담과 유사로 전락(?)시키는 이 같은 위험천만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게 성서 강해에 유익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단 말인가? 성서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면서도 합리적 사고와 판단을 가지고 성서에 대한 시대의 물음과 도전을 회피하지 않는 신학과와 설교자들의 성서해석이 있다. 이를테면 히브리어 원문을 분석하여 출애굽 당시 히브리인들이 당시 갈라진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이 아니라 갈대숲을 해치고 갔다고 주석하든지, 화산폭발을 목격한 히브리인들이 이를 하나님의 현현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자신들을 인도했다고 고백했다라거나, 신약으로 넘어와서는 어린아이가 예수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건네는 것을 보고 부끄럽게 여긴 어른들이 숨겨놨던 자신의 도시락을 너도나도 꺼내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해석하는 것 등이다. 이는 분명 진일보한 성서해석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성서의 많은 부분이 민담과 유사임을 간단히 수용해 버리면 이처럼 성서의 기록을 설명해 내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 자체가 사라진다. 이것이 어디까지나 민담과 유사인 이상 기록된 그대로 수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바다가 갈라지고 그사이를 건넜다고 기록되어 있다면 이는 그냥 갈라진 바다를 건넌 이야기이며, 모세가 지팡이를 갖다 대니 나일 강이 피로 변했다는 기록은 그냥 나일 강이 진짜 피로 변한 이야기이다. 민담과 유사가 가진 판타지를 굳이 제거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7일 동안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돼 있으면 그렇게 읽으면 되고, 선지자 엘리야가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했다고 나와 있으면 그렇게 알고 이해하면 된다. 이는 성서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믿는 보수 기독교의 태도와 일면 유사해 보이나 지금까지 설명한 ‘중간단계’를 고려하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성서의 많은 기록이 실제 역사가 아니라면, 좀 더 엄밀히 실제 역사라는 객관적 증거가 없는 민담과 유사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으며, 어떻게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역사’는 근대의 산물이다. 역사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나 근대에 이르러서야 나오게 된 ‘역사’란 개념이 종교와 신앙, 더 나아가 인류가 남긴 현존하는 모든 기록의 진실성을 판가름하는 절대적 척도가 될 수는 없다. 역사와 신앙 간의 상관관계는 버거킹 와퍼의 맛과 피타고라스 정리 사이의 상관관계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다. 성서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왜 당시 공동체는 이런 기록을 남겼을까? 왜 그 후대 사람들은 이를 수집하고 편찬했으며, 이를 보전했을까? 나는 이 물음이 성서 강해의 시작이자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이 답을 찾는 과정이 강해이자 신앙이다.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한 답을 가진 것이 신앙이고, 이 답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신자가 있다면 한 번 생각해보라. 나는 과연 성서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는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같은 유치한 수준의 구호 말고 말이다. 신앙은 어디까지나 과정이다. 성서의 역사(성서 자체의 형성사를 의미한다)는 바로 그 과정의 역사다. 그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 이렇게 신앙의 길을 가고서야 비로소 도올 선생이 본서의 서문 마지막에 남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가 과연 우리 역사의 지평 위에서 무슨 의미를 갖는지 기성종단의 편협한 울타리를 뛰어넘어 우리 민족 전체가 한번 체험해봐야 할 시점이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5668768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