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조국(鷄鳥國) 표류기 (제1부. 3-4) – 수다피플

3

 

마침내 하명이 떨어져 두 발로 꼿꼿이 어전을 향해 걸어가니

문고리가 달려와 내 정강이를 걷어차며 호통이다.

“감히 인간이 어찌하여 닭처럼 두 발로 걷는가? 무엄하다

몸에 걸친 털을 다 벗고 짐승답게 네 발로 걸어 여왕님을 알현하라.”

그 말에 나는 입은 옷 모두 벗고

무릎을 꿇어 엉덩이를 치켜든 채 닭똥을 헤집으며 네 발로 기어가는데

주위에 몰려 있던 닭들이 나의 모습을 기특히 여겨하며

내 몸을 힐끔힐끔 찬찬히 살피더라

닭나라에 왔으니 닭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 어찌 당연하지 않으랴.

 

그런 가운데도 나는 연신 눈을 굴려 주위를 살펴보니

청조대는 천정이 높고 천정과 창살마다 거미줄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막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데

그 형상이 무수한 이슬을 뿌려놓은 듯하더라.

내가 지나갈 때마다 닭들이 환영하여 흔드는 날갯짓에

바닥에서 일어난 닭똥의 분말이 먼지처럼 자욱하게 일어

빛을 반사하니 그 또한 아름답기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 먼지가 내 입과 코를 가득 채우니 실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마시지 않아도 취해 사리분별을 놓을 지경이었다.

 

각설하고

마침내 어전에 도착하여 우러러보니

철창마다 주렁주렁 횃대가 매달렸는데 그 단이 여섯 개라

가장 위에는 보일 듯 말 듯 신묘한 횃대가 있어

저 아래 바닥의 닭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듯하더라.

그 아래 횃대는 우윳빛이 도는 상아를 빚어 바구니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광택이 흐르는 한 가운데 포동포동 살이 찐 암탉이 인자하게 앉아

만면에 웃음을 흘리며 무엇인가를 게걸스레 쪼아 먹고 있더라.

그 입에 온통 사료가 덕지덕지 묻어 참으로 보기 좋았구나.

 

마침내 문고리가 날개를 요란하게 퍼덕이니 그제야 여왕이

먹다말고 눈을 가늘게 떠 나를 바라보는구나.

내 눈이 그 눈과 마주치자 눈이 부셔 감히 바로 우러러볼 수 없었다.

마침내 여왕이 옥이 굴러가는 목소리로

“내 일찍이 이 세상에 인간이 산다는 말은 들었지만

오늘 처음 인간을 대하니 감회가 새롭구나.

어디 보자,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

일찍이 듣지 못한 하명에 고개를 드니 여왕의 눈매가 지긋하다.

 

4

 

“인간이 우리 닭에게 가장 가까운 짐승이라는 말은 내 익히 들었지만

정말 두 발 달린 짐승이 맞구나.

다만 몸에 털이 없는 게 미개한 족속인 줄을 알겠다.

자, 날개를 한 번 펴보아라.“

여왕이 나를 보고 우악스럽게 말을 하니

나는 그 명에 두 팔을 활짝 펴고 퍼덕이는 흉내를 내었다.

“역시나 그렇구나, 날개가 참 아름답구나, 날 수는 있느냐?“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니 여왕이 말씀하시길

“날 수 없는 것도 우리 닭과 닮았으니 가상하다”하며 자못 흐뭇해하더라.

 

그 말에 나는 머리를 깊이 조아리고 목을 가다듬어 인간됨을 논하니

“일찍이 닭은 세상에 새벽을 알리는 신령한 존재라 하였거늘

인간은 천지만물 중 닭에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

닭과 마찬가지로 두 발로 걷고 두 날개를 가졌습니다.

더욱이 늘 닭을 사모하여 그 풍습을 따라 머리에 벼슬 쓰기를 즐겨하되

온갖 벼슬이 길가에 견골(犬骨)처럼 굴러다니지만

벼슬 중에 닭 벼슬이 최고입니다.

그리하여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을 일러 벼슬아치라 하고

벼슬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것만이 아니라 인간은 윤리와 도덕을 숭상하고

삼강과 오륜을 목숨보다 귀히 여기며

의리와 충성과 효에 목을 매니

그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마저 던지길 마다하지 않습니다.

또한 무를 숭상하여 자주 전쟁으로 그 용맹을 시험하며

정의를 세워 불의를 치고 질투와 시기를 경멸하며

천금 재산 모으기를 즐겨하여 하나를 얻으면 둘을 갖고자 하며

육식을 좋아하여 못 먹는 음식이 없으니

소 개 돼지 염소 토끼는 물론이요 그 중에 으뜸이 삼계탕이라 합니다.”

 

내 이렇게 인간 세상을 자랑하여 이야기 하니 여왕이 듣고 말하길

“인간은 참으로 괴이하다, 어찌하여 윤리니 도덕이니

그런 야만스러운 풍습을 만들어 스스로를 학대하고 괴롭히는가?

닭은 순하여 마당에 떨어진 알곡을 쪼아 먹고

갯가에 있는 지렁이를 먹고 물 한 모금 마시면 만족하니 가히 신선이라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사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걸 어기는 인간은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 말에 주위의 모든 닭들이 인간을 경멸하여 야유를 보내는구나.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5987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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