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쓰는 타임머신 – Philips Fidelio X2HR 리뷰 by 수다피플

매일 퍽퍽하고 힘에 겨운 일상, 하지만 종종 색다른 기분으로 다가오는 날도 있다. 그 기분은 마치 간만에 잠에서 일찍 깼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고 가뿐한 느낌. 하늘을 무심코 올려다 볼 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듯한 푸른색이 심장을 촉촉하게 적시는 느낌. 어느 화창한 날 오후 5시, 호수 위로 잘게 부서지는 노란 햇빛에 마음이 녹는 것 같은 느낌.

 

 

 

몸에 있는 피 한 방울까지 맑아지는 것만 같은 상쾌한 기분. Philips의 Fidelio X2HR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순간 바로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컨디션이나 날씨 따위는 상관 없었다. 언제든 머리에 쓰고 음악을 틀면 귀는 물론 뇌 속까지 맑아지는 이 신기한 경험.

 

 

 

사실 몇 년 전에 이미 ‘Fidelio X2’가 있었다. 이제 갓 세상에 태어난 Fidelio X2HR은 그 헤드폰과 너무도 똑같이 생겼다. 겉에 새겨진 문구와 이름이 아니었다면 아마 감쪽같이 속았을지도.

 

 

 

Fidelio X2의 HIGH DEFINITION이라는 문구가 Fidelio X2HR에서는 HIGH RESOLUTION으로 바뀌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렇다면 Fidelio X2HR이라는 이름의 뜻은 당연하게도 HIGH RESOLUTION, 고해상도라는 것이렷다?

 

외관만 비슷하게 생긴 것 뿐만 아니라 수치상의 스펙도 똑같다. 주파수 대역 5~40,000Hz, 100dB의 민감도, 30ohm의 임피던스, 50mm의 네오디뮴 드라이버까지. 이쯤 되니 슬슬 의심의 꽃이 피어오른다. 왜 똑같은 헤드폰에 굳이 ‘HR’이라는 꼬리까지 이름에 붙여가면서 새로 출시했을까?

 

 

 

의아하긴 하지만 어쨌든 음악을 들어본다. 무슨 노래를 가장 먼저 재생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La La Land OST를 틀었다. 영화 자체의 스토리도 매력적이었지만 음반에 녹음된 곡들의 음질도 환상적일 정도로 생동감 있다. Fidelio X2HR을 타고 흐르는 선율에는 센 불에 휙휙 구워져 방금 참기름이 쓱쓱 발린 김처럼 윤기가 흐른다. 뮤지컬 음악을 분명히 소리로 들었는데 눈 앞에 무대가 보이는 것만 같다. 영화관에 앉았을 때가 생각난다. 자리도 중앙 쪽에 앉아서 편하게 관람했었고, 스피커를 뚫고 싱싱한 노랫소리가 팔딱팔딱 극장을 울렸다. 사운드의 웅장한 스케일을 사방에서 입체적으로 느꼈던 그 때의 기억이 강제 소환된다.

 

 

 

팝-록 밴드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한 쪽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주구장창 쳐대는 노래가 많다. 나는 그런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기타 소리가 묻히지 않고 생생하게 들리는가를 좋은 음질의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일본 국민 밴드 Mr.Children의 1996년작 「名もなき詩」. 오른쪽에서 어쿠스틱 기타의 맛깔 나는 스트로크 연주가 이어지는데, 발표된 지 20년이 넘은 오래된 곡이지만 Fidelio X2HR은 그 세월이 무색하게 기타 사운드를 선명하게 빚어서 들려준다. 보통의 이어폰 같았으면 다른 소리에 쉽게 묻혔겠지만.

 

 

 

변화무쌍한 이퀄라이저 조정에도 끄떡없다. 음역대 주파수 조절을 어떻게 하든 모조리 다 받아준다. 저음을 높이고 고음을 다듬고 인위적으로 에코 효과를 넣어줘도 전혀 이질감 없이 내가 원하는 사운드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굳이 장르도 편식하지 않는 모습이다. 전자음으로 메워진 댄스곡이나 우수에 젖은 재즈넘버, 평화로워지는 피아노곡,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애절한 발라드, 신나는 스윙까지. 음악의 본질을 고스란히 전한다.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었을 때의 그 느낌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전신이었던 Fidelio X2와 음질로 구분한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청명한 고음부터 단단한 저음, 해상력까지 아주 흡사하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Fidelio X2HR이 조금 더 깊고 풍성한 저음을 들려주는 것 같기도 했다. Fidelio X2가 대형 뮤지컬 홀의 Superior, S석이었다면 Fidelio X2HR은 Royal, R석. 좌석에 따라서 소리의 차이가 나는 건 아니지만 눈으로도 볼 수 있는 현장의 생생한 정도가 조금 다르다.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무대에 훨씬 잘 몰입할 수 있는 그런 R석의 느낌이다.

 

 

 

고음질 플레이어에 원음 파일을 넣어 즐기면 가장 좋지만, 스마트폰에 있는 MP3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감상한다고 해도 충분히 감동을 안겨준다. 영화 「위플래쉬」에서 주인공의 연주력을 향상시켜 최고의 퍼포먼스를 완성하기 위해 의자를 집어 던지고 윽박을 지르며 사람을 극한으로 내모는 대머리 음악 선생처럼, 표현 가능한 음악 파일의 전부를 한껏 끌어올려 주는 느낌.

 

 

 

고급 마이크처럼 둥글고 탄탄하게 짜여진 그릴. 아쉽게도 외부 소리를 차단하지는 못한다. 즉, 오픈형 헤드폰이라는 것. 시끄러운 대중교통에서 사용하기는 사실상 힘들고, 조용한 곳에서 혼자 음악에 집중하고 싶을 때 적절하다.

 

 

 

케이블의 길이는 3m로 아주 길다. 스튜디오 모니터링 헤드폰다운 모습. 케이블은 짧은 것보단 긴 것들이 대체로 편하지만, 3m는 아무리 생각해도 길어도 너무 길다. 그래도 다행히 케이블을 조금 감아놓을 수 있는 클립이 달려 있다. 케이블은 튼튼해 보이는 패브릭 재질로 마감되어 있으니 걱정 말고 휙휙 감아 끼워 사용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헤드폰 이어패드의 쿠션은 가죽으로 되어 있는 것들을 많이 봐왔다. Fidelio X2HR은 벨벳 재질이다. 폭신함을 잘 지켜주는 것뿐만 아니라 촉감이 매우 좋다. 강아지 목덜미처럼 계속 만지작거리고 싶다.

 

 

 

헤드밴드도 다른 제품들과는 다른 방식. 다리가 길어지는 게 아니라 머리에 닿는 패드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며 정수리를 감싼다. 해먹에 누웠을 때 온 몸을 쫄깃하게 감싸는 그 느낌이 머리에 전해져 온다.

 

 

 

오버이어 형태로 귀를 워낙 크게 다 덮어버리는지라 에어컨 바람이 없다면 여름에는 쓰기 힘든 게 못내 아쉽다.

 

 

 

헤드폰의 수준이 이쯤 되면 음악을 마음으로 듣는 건지, 음질을 귀로 분석하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 나는 요즘 들어서 음악의 감성적인 느낌보다는 음질을 파헤치는 재미로 노래를 듣고 있다. 하지만 음악에 집중하든 음질에 집중하든, 그 둘 다를 전부 최고치로 만족시키는 헤드폰임이 확실하다.

 

Fidelio X2HR은 음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새로운 소름을 몸에 새겨주는 찬란한 헤드폰. 조용한 공간에서 머리에 조심스레 쓰고 볼륨을 한껏 높이면 그 음악을 처음 들었던 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격은, 이 글을 작성하는 현재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아마도 전신 모델인 Fidelio X2(40만원대)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해외 구매 대행으로 현재 50만원대로 형성되고 있는 중. Fidelio X2를 이미 사용하고 있다면 굳이 이걸 또 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업그레이드라고 하기에 상당히 민망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시 나타나서 ‘나 고음질이예요. 다른 헤드폰 다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부분이 좋아졌는가에 대한 고민을 떠나서 어쨌든 이 헤드폰은 아주 싱싱하게 살아있는 음질을 들려준다. 가격에 상관 없이 고급 헤드폰을 하나 장만하고 싶다면 1순위로 리스트에 올려놓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헤드폰으로 꼭 들어봤으면 하는 추천곡을 소개하며 마친다. 한영애가 ‘나는 가수다’에서 불렀던, 이문세 원곡의 「옛 사랑」.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것 같은 신비한 체험을 하기에 매우 적격이다.

 

 

장점
–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최고의 음질
– 해먹처럼 안락한 헤드밴드
– 보드라운 이어패드의 재질
단점
– 조용한 곳에서만 써야 하는 오픈형 헤드폰
– 목에 걸면 거슬리는 커다란 크기
– 먼지가 잘 묻는 이어패드의 재질

from 얼리어답터 http://www.earlyadopter.co.kr/94977?utm_source=rss&utm_medium=rss&utm_campaign=%25eb%25a8%25b8%25eb%25a6%25ac%25ec%2597%2590-%25ec%2593%25b0%25eb%258a%2594-%25ed%2583%2580%25ec%259e%2584%25eb%25a8%25b8%25ec%258b%25a0-philips-fidelio-x2hr-%25eb%25a6%25ac%25eb%25b7%25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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