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로 본 강릉단오제 – 수다피플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에는 정초, 단오, 한식, 추석, 동지가 있습니다. 대체로 추석을 가장 큰 명절로 생각하지만, 북쪽지방인 영동지역에서는 추위가 물러가는 음력 5월 5일 단오날이 추석보다 더 큰 명절입니다. 2005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릉 단오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주빚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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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사당 건물 옆 건물에서 신주와 제주를 빚습니다. 제기들이 마당에 꺼내져 있네요. 단오의 시작은 신주神酒빛기 입니다. 음력 4월 5일이 되면 옛 강릉 관아의 건물인 칠사당에서 신에게 드릴 제주를  빚습니다. 이때 神酒는 백미 2말에 누룩 20장이 들어갑니다. 음력 4월 25일 되면 단오제기간(음력 5월 2일 ~ 5월 8)에는 신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마실 신주를 빚습니다. 이때 신주에는 백미 3말에 누룩 30장으로 신주를 빚습니다. 아마도 숫자 2와 3을 더하면 5인데, 5월 5일 단오날을 신과 인간이 만난다는 의미의 숫자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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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와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 중입니다. 작은 고구마로 보일 만큼 밤이 참 알찹니다. 제례에 올라갈 음식들도 숫자의 규칙을 따릅니다. 대추는 3되, 밤은 2되가 올려집니다.

 

신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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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에 담긴 칠사당 신주(좌)와 양조장의 신주(우)>

 

신주는 두 종류입니다. 전통 그대로 칠사당에서 만들어진 신주와 단오기간에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양조장에서 주조된 신주입니다.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신주神酒는 무척이나 맛있습니다. 합성감미료인 아스파탐대신 유당을 넣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척 부드러운 단맛입니다. 칠사당에서 만들어진 신주의 맛은 무척 떫은 맛입니다. 옛 사람들의 술맛이 그대로인데 입에서 즐기기에는 무척이나 떫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술은 지금의 커피의 역할이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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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커피박물관>

 

 

산신제와 성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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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을 모시는 산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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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국사를 모시는 성황사>

 

신에게 드릴 신주神酒가 만들어지면 4월 15일에는 대관령 산신당에서 산신인 김유신 장군을 모시는 산신제를 유교식으로 제례를 올립니다. 그리고 산신당 바로 아래 성황사에서는 국사성황인 범일국사에대한 제례도 유교식으로 올려집니다. 신목(단풍나무)을 베어 무녀(세습무)가 부정굿(터와 물건을 정화시키는 굿)과 청신굿(신을 청해 모시는 굿)으로 김유신장군신과 범일국사신이 강림한 신목을 가지고 내려옵니다.

 

 대관령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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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길로 들어면 산신당과 성황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풍력발전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이곳을 대관령이라 부르게 된 이유가 바람때문이라는 말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바람이 대굴 대굴 굴러 내려간다 해서 대관령이라 했다고도 하는데 발음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또 강릉지역만의 “고시래” 유래설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강릉에서 대관령을 넘어갈 큰길을 만들었다 해서 대관령이라 불려졌다고도 합니다. 길을 뚫은 고씨라는 사람을 사람들이 죽였다 합니다. 그 길 때문에 임진왜란때 왜적이 강릉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해서 억울하게 고씨가 죽임을 당한 뒤에 흉년이 잦았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씨의 무덤을 잘 만들어 모신 뒤에야 농사가 잘 되었다 합니다. 지금은 고씨의 무덤이 어디인지 몰라  “고씨네” 하면서 음식을 그에게 바친다 합니다. 강릉지역에 내려오는 “고시래” 유래 설화입니다.

 

구산 서낭제와 좆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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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셔온 신목은 성산면 구산리의 구산서낭당에서 쉬어 모십니다. 이곳 구산은 대관령을 넘나드는 관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산이라는 지명은 원래 니구산尼丘山으로 불렸다 합니다. 공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낳게 해달라 기자치성을 올리던 니구산의 풍경과 비슷하다해서 이곳을 니구산, 이구산으로 불렸으나 니尼가 빠지고 지금의 구산리가 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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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곳 성산면 위촌리에는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기자치성의 상징물인 “좆바위”가 있습니다. 부르기 망측한 이름이기는 합니다만 전에는 “개좆바위”라 불린 것 보다는 조금 나은 이름입니다. 한번은 이 바위가 텔레비젼에 나갔다 합니다. 이름 그대로 나간 뒤에 방송국과 마을에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합니다. 그래서 한때는 마을 사람들은 바위의 이름을 수분구와 흔들바위, 또 신앙동상과 불알바위라 개명을 하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 불려진 이름을 그대로 후대에 전해주자해서 그대로  “좆바위”라 불려지고 있습니다.

 

학산서낭제와 범일국사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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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리 서낭당>

 

전에는 구산리에서 바로 강릉의 여성국사황사로 신목을 모셨으나 1999년 학산지역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범일국사의 고향인 이곳 학산을 들려 서낭제를 올리게 됐다합니다. 범일국사의 고향인만큼 그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석천우물에 비친 해를 떠 마시고 범일국사를 잉태했다합니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애를 낳으니 부모들은 그 사실을 숨기려 갓난 아기를 지금의 학바위에 버렸는데 3일 뒤 죽은 줄 알았던 아기는 학이 날개를 펴 아기를 보호하고 있었고 아기의 입에는 아름다운 구슬을 물고 있었다 합니다. 하늘의 뜻이라 여겨 다시 데려가 키우니 훗날 나라의 큰 승려가 되었다 하여 지금도 이곳 학산리에서는 우물을 보호하고 그를 위한 서낭제를 올리고 있답니다. 딸이라 버려진 바리대기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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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서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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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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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바위>

 

덕행이 높은 승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법계를 받은 범일국사國師는 고향으로 돌아와 굴산사라는 절을 지었다 하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 절이 사라진 이유에 관한 설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승려의 무덤이라하는 부도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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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산사지 부도>

 

고려말 승려? 신돈의 여종인 반야般若가 공민왕의 후궁으로 들어가 낳은 아들인 우왕禑王이 이성계에 의해 이곳 굴산사로 유배보내졌다 합니다. 이성계는 우왕의 죽음을 원했으나 굴산사의 승려들이 우왕을 보호하니 굴산사를 불태웠다 합니다. 그리고 우왕은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는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봉안제(대관령국사 여성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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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국사여성황사>

 

강릉시의 입구에 해당되는 홍제동의 범일국사와 혼인을 맺은 여성황사입니다. 호랑이에게 머리만 남긴채 죽임을 당한 정씨 소녀를 대관령국사성황인 범일국사와 음력 4월 15일에 부부의 연을 맺어주었다 합니다. 범일국사 사후에 성황신으로 모셔지다가 정씨의 죽음이 안타까워 대관령국사성황사에서 범일국사와의 영혼결혼식을 치뤄줬다합니다. 그래서 혼인날인 음력 4월 15일에 대관령에서 출발해 구산과 학산을 거쳐 이곳 여성황사에 모셔진다 합니다.  산신인 김유신장군, 범일국사성황과 여성국사성황이 음력 5월 3일 이곳에서 단오제단으로 향하는 영신제까지 모셔집니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656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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