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칼럼]굿바이 부곡하와이 – 수다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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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인지 사대의식(?)인지 허위의식인지 딱히 뭐라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해외의 명소 이름을 브랜드로 쓰기를 잘했다. 수안보 와이키키라든가 일동 사이판이라든가 좀 다르긴 해도 ‘영남 알프스’라든가 무주 티롤 호텔이라든가. 부곡 하와이도 그 중의 하나였다.


부곡 하와이에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은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드넓은 실내 풀장엔 사시사철 수영을 즐길만한 미지근한 물이 그득했고 풀장 가운데에는 휘황찬란한 쇼가 열렸다. 거기서 ‘캉캉춤’을 실제로는 처음 보았다. 먼발치에서만 보아도 TV로 보는 것과는 완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천국과 지옥 서곡>에 맞추어서 미끈한 다리들이 앞차기를 연발하며 쉴새없이 움직이고 치마가 좌우로 왔다갔다 뭔가 보일랑말랑 하는 것이 초딩 넋 정도는 호주머니에서 동전 빼내듯 두려뺐다. 나는 지금도 ‘현란하다’는 형용사에 이르면 부곡온천의 쇼를 떠올린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북한의 돈줄 가운데 재일교포의 비중에 대해 얘기가 나오고 “재일교포들이 어떻게 국가를 먹여 살릴 수 있겠냐”고 누군가 한탄했을 때 한 명이 이런 명료한 반박을 했다. “우리 대학 갈 때 중앙대학교를 재일교포가 인수했던 기억 나지? 그래서 학교 좋아질 거라고 했던 거.” 그랬다 이름이 김희수였나. 어슴푸레 기억 속을 더듬고 있는데 그 다음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양반은 빌딩 수백 개 가진 부동산 재벌이었는데 중앙대 인수하려고 건물 딱 하나 팔았다지 아마. 남이고 북이고 재일교포들한테 손 벌리고 살았던 역사가 있어. 북한을 먹여 살릴 수야 없겠지만 큰 도움은 될걸.”


부곡하와이도 그랬다. 빠찡꼬 산업으로 돈을 벌었던 백농 배종성이라는 재일교포의 ‘고국 투자’로 이뤄진 산물이었다. 이 분의 생애는 그렇게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전세계를 돌며 수집했다는 엄청난 양의 박제나 진귀 동물 표본 (부곡하와이에 입장하면 그걸 다 볼 수 있었다)만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박제를 보면서 사자의 이빨이 얼마나 무서울지, 그리고 동물원에서 씰룩거리면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백곰이 얼마나 거대하고 그 앞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할 수 있었고 몽구스가 뭔지, 바다 가재가 어떻게 생겼는지 흡사 동물도감 들여다보듯 관찰할 수 있었다.


해외 여행 한 번 하면 ‘가문의 영광’이던 시절, “하와이 갔다 왔다.”는 말은 진짜 남태평양의 하와이가 아니라 부곡 하와이를 지칭하는 말이었고, 또 그래도 자슥 좋았겠네 하는 부러움의 대상은 됐다. 서울 사람들도 부곡 하와이에 오면 눈이 휘둥그레졌으니 나름 자긍심의 대상이기도 했었다. 서울 가도 이런 거 없재? 히면서. 그리고 부곡하와이에 얽힌 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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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올라가던 겨울이었던 것 같다. 양상훈이지 오상훈이지 좀 가물거리는 동네 친구가 있었다. 녀석은 ‘톰 소여’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악동이었다. 비탈길에 물을 좀 뿌려 놓으면 다음날 썰매 탈 수 있지 않겠냐며 나를 충동질하여 양동이에 물 담아 낑낑거리며 비탈을 오르게 만들었고 그걸 발견한 어머니와 통장네 아주머니에게 초주검이 되도록 박살나게 만들었던, 자기는 쏙 빠져 나가설랑 “농담이었는데예” 해서 나를 더 바보로 만들었던 녀석이었다. 그 뒤에 20원짜리 자야 사주면서 미안하다 하고 낄낄거렸던.


그 녀석 집 근처에 철공소 다니던 형 한 명이 혼자 살았다. 고아라는 소문도 있었는데 마음씨 착하다는 평을 듣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이 철공소 형이 어느 여자한테 꽂혔다는 얘기가 들렸다. 역시 신한모직이라고 근처에 있던 공장 다니던 나이 스물 두엇 된 누나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그녀만 보면 그녀만 보면~~” 수준이었고 “바보 바보 나는 바보인가봐” 송골매 노래에 걸맞는 행보였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 전언의 소스는 상훈이였다.


이 얘길 들려주며 이 톰 소여 상훈이는 톰 소여가 좋아하던 소녀 베키같이 순수했던 나에게 자신의 놀라운 얘기를 들려 주었다. “야 어제도 그 누나 집 앞에서 서성이다가 딱 오니 편지 던져 넣고 도망가드라. 뭔지 몰라도 데이트 신청이겠지. 그래서 내가 답을 해 주기로 했다.” 네 명 누나에게서 글씨를 배운 상훈이 녀석 글씨체는 완연한 여자 글씨였다. 글씨와는 전혀 다른 성정의 이 악동 녀석이 데이트 허락 답신을 제멋대로 적어 형 집 문 앞에 놨던 것이다. “12월 23일 토요일 5시 고려당 근처 육교 위에서 기다릴게요.”


이 소문은 번개처럼 동네 친구들에게 퍼졌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저녁, 고려당 근처 육교는 거대한 주목의 대상이 됐다. 일찌감치 택시 승강장에서 매달리기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은 철공소 형이 육교 위에 나타날까 그렇지 않을까 내기를 걸었다. 그런데 5시가 되기 훨씬 전에 이미 양복을 입은 철공 형은 육교 가운데에 섰다. 이발도 깔끔하게 하고 손에는 장갑까지 끼고 머리에는 포마드 기름도 바른 듯 윤이 났다. 우리는 먼발치에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왔다 왔다.” 당연히 상대가 나올리는 없었다. 상훈이를 위시한 악동들은 육교를 지키는 보초처럼 서 있는 철공 형을 바라보며 낄낄거리다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날 방학을 시작했고 <탐구생활>을 그날로 끝내기 위해 친구집에서 저녁을 먹고 아홉씨쯤 육교 앞을 지나던 나는 기겁을 했다. 그때까지도 철공 형이 부곡하와이의 박제처럼 서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부산이 따뜻하다지만 바람 불면 체감온도 영하 십도의 겨울 밤 몇 시간을. 아이고야 큰일났다 싶었다. 상훈이에게 달려갔고 녀석의 장난을 책임지라고 윽박질렀다. 뭐랄까 한 사람의 사랑을 이런 식으로 골탕먹이는 건 아니라는 정의감이 들었던 것일까. 저러다 정말 사람 얼어 죽겠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을까. 상훈이 어머니가 나와서 영문을 물어 보실만큼 언성을 높였다. 그 뒤는 모르겠다. 그 형이 몇 시에 집에 들어갔는지, 상훈이나 상훈이 어머니가 사과를 했는지.


그런데 그로부터 한 1년 뒤였던가 철공소 형과 신한모직 누나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결혼식에 갈 사이는 아니었고, 그런가보다 잘 됐구나 하고 무심히 들었는데 어느 날 귀가하는데 사람들이 깔끔하게 세차된 택시 한 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택시를 대절해서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였고 수줍지만 행복한 웃음을 전파하고 있던 신혼부부는 철공소와 신한모직 남녀였다. 아 그런가보다 하고 돌아서는데 상훈이 녀석이 또 뒷 얘기를 들려 주었다.


“신혼여행 어디로 가노 하니 하와이 갑니더 하데. 부곡하와이 가는 거 다 알지. 근데 한 아저씨가 니는 택시 타고 태평양 건너가나 웃으니 지금은 부곡하와이지만도 언젠가는 꼭 하와이 갈 낍니더 카대. 아 그때 그 사건 때 우리 엄마가 가서 데리고 들어왔거든. 그리고 그 누나한테 함 얘기를 했다 카더라. 참 니 좋아하는 거 같다고. 누나는 전혀 몰랐는데 그때부터 관심이 생기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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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여럿에 둘러싸여 있던 철공소 형은 저 웃음을 거둘 수 있을까, 저 입이 다물어질까 싶을 만큼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마 진영거쳐 남해안 고속도로 타고 가다 진영 IC에서 빠져 창녕 쪽으로 올라가다가 녹색의 온천 마크()로 사람들을 맞아 주던 부곡하와이 가는 길 내내 그 형은 웃음을 끊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하와이가 아니라 어디 천국의 정원인들 부곡하와이 호텔 몇 평 방에 견 줄 수 없었겠지. 2박 3일 다녀온다고 했으니 수영복 입고 풀장에서 자맥질도 했을 것이고 우아하게 쇼도 관람하며 그들의 새출발을 기념했으리라.


얼마 전 부곡하와이 폐장 소식을 들으며 그때 그 커플 생각이 났다. 이제 그분들도 환갑을 넘어서거나 바라보는 나이가 됐겠다 싶었다. 운이 좋았다면, 아니 나쁘지만 않았다면, 그 들은 진짜 하와이를 다녀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에서도 철공소 형은 내가 보았던 그 웃음의 홍수는 뿜어내지 못했으리라 내멋대로 짐작해 본다. 그 웃음을 품어 주었던 부곡하와이의 폐장을 아쉬워하며, 이렇게 추억의 장소 하나가 사라져 감을 가슴 속으로 접어 넣는다. 굿바이 부곡 하와이.







산하


편집 : 꾸물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6642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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