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칼럼]6.10항쟁 30주년: 1987년 6월, 내가 본 잊지 못할 풍경 – 수다피플









<동지를 위하여>라는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2절을 부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휘날리던 그 깃발은 가슴 동여맨 영혼이었소. 치던 바람 그 함성은 검푸른 칼날이었소.”




이 가사를 부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도 모른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만난 게 아니라 마주쳤을 뿐이다. 87년 6월 어느 날 깊은 밤 어두운 뒷골목에서였다.



당시 부산의 ‘백골단’은 징집된 전경들에게 청잠바 입힌 사람들이 아니었다. 무술 경관인지 깡패인지 모르겠지만 스무살보다는 훨씬 나이가 든 30대의 단단한 사람들이었고 그 손에 잡힌 학생들은 소름이 끼치도록 두들겨 맞았다. 자습 끝나고 돌아오던 부전동 시장 골목, 한 백골단이 학생을 짓밟고 있었다.



학생은 엎드려 있었고 백골단은 옆구리고 머리고 할 것 없이 걷어찼다.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지만 그 살기에 “그만하세요” 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백골단은 요즘 말로 ‘관종’인 듯 했다. 시위하듯이 소리 소리 지르며 발길질을 했다. 



 “내놔 이 새끼야. 내놓으면 안 맞잖아.” 




무슨 소린가 했더니 엎드린 학생은 뭔가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백골단은 그걸 빼앗으려는 거였고.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심심하면 옆구리를 걷어차고 뒤통수를 밟으면서 그는 “내놔. 내놓으라고.”를 연발했다. 그러기를 십 분을 넘게 했을 것이다. 학생의 팔이 풀렸고 그 품안의 뭔가가 눈에 띄었다. 그건 박종철의 초상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난다. 생면부지였을 것이 뻔한 박종철의 초상이 뭐라고 그 매를 감당했단 말인가. 입에 피를 물고 기절할 지경으로 그걸 부여잡고 놓지 않았단 말인가. 지금 그 장면을 떠올려도 가슴 밑바닥에서 구토 같은 울컥함이 치민다. 그 이름 모를 학생에게 박종철의 초상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가슴과 동여맨 영혼’이 아니었을까.


박종철 영정-2.jpg



1987년 6월 경찰들 기가 질리도록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젊음들, ‘먹고 살자’는 핑계에 갇혀 있었으나 끝내 그 핑계의 철창을 넘어 ‘최루탄 쏘지 말라.’고 경찰 방패에 매달리던 넥타이 부대, 지친 학생들에게 해장국이라도 먹으라면서 배춧잎 뿌리던 오락실 아저씨, 계엄령 소문에 유서를 쓰고 거리로 나섰다는 선배, 도망오는 대학생들을 끝까지 받아들이고는 경찰의 입김이 느껴지는 코 앞에서 셔터를 내려 버렸던 우리 부모님, 



다시 한 번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임을 그들 덩어리의 힘으로 입증했던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표한다. 상처 많고 우울하고 금 많이 갔을지언정 꾸역꾸역 엉금엉금 악으로 깡으로 민주주의를 일구고 나라를 나라답게 만든 우리 현대사가 나는 한없이 자랑스럽다.


‘동지를 위하여’ 이 노래를 다시 흥얼거린다. 



그대 가는 산 너머로 빛나는 새벽별도 


어두운 뒷골목에 숨죽이던 흐느낌도 


피투성이 비구름되어 진달래 타는 언덕되어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휘날리던 그 깃발은 가슴 동여맨 영혼이었소


치던 바람 그 함성은 검푸른 칼날이었소 


우리 지금 여기에 발걸음 새로운데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황토구비 먹구름도 굽이치던 저 물결도 


살아오는 동지의 새여명의 눈빛으로


간다 터진 물줄기로 간다 해방의 거리로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오늘은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뜨겁게. 







산하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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