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칼럼]역사 왜곡의 에베레스트: 옛날에 유사역사를 역사로 만들다가 걸린 분이 계셨다 – 수다피플






누구나 읊어대는 E.H 카의 말대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다. 하지만 사실 주로 말을 하는 쪽은 현재다. 현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남 말은 허리를 자르기 십상인 데다 기껏 꺼낸 말을 깔아뭉개는 데에 능한, 못난 회사 간부와 같은 대화법을 지니고 있다. 조금 더 심한 경우, 있는 사실을 뭉개는 걸 넘어서 없는 사실을 만들고 부풀려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이 행위에 해당하는 숙어가 바로 ‘역사의 왜곡’이 되겠다. 2000년 11월 5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폭로한 한 사건은 역사 왜곡의 단연 최고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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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이 신문이 보도한 것은 미야기현 유적 발굴 현장에서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고고학자가 가짜 석기를 파묻는 장면이었다. 고고학자가 자신이 준비한 유물을 몰래 파묻고 그걸 다시 꺼내는 시늉을 한 뒤 만세를 부르고 고고학 교과서를 다시 써 온 어처구니없는 1인극의 덜미를 잡은 것이다.

허탈하리 만큼 기가 막힌 일은 수십 년 동안 후지무라 신이치가 ‘신의 손’이라 불리울 만큼 경이로운 고고학적 발견을 이어온 학자라는 사실이었다. 1981년 신이치는 4-5만년 전의 석기를 발견했고 93년에는 55만년 전, 99년에는 70만년 전의 석기를 연이어 발견하는 장관을 창출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1981년부터였을까.

그건 1978년 엄동설한의 1월, 경기도 연천의 한탄강변에서 한국인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던 미국 2사단 하사관 탓이 컸다. 고고학을 전공했던 미군 하사관 그렉 보웬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애인을 팽개쳐 둔 채 강변을 뒤지고 있었다. 뭔가를 주워들고 한참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던 보웬은 갑자기 그것을 치켜들고는 심봤다를 외치는 심마니처럼 환호했다.

“내가 뭘 찾았는지를 보라고!”

그가 그렇게 정신없이 외칠 만 했다. 그건 27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 시대 주먹도끼였던 것이다. 연천 전곡리의 구석기 유적은 그렇게 발견됐다. 유럽과 아프리카 지방에만 발견되었던 아슐리안 석기 형태의 주먹도끼와 박편도끼가 동북아시아에서 나온 것이다. 전 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힐 고고학적 대발견이었다. 그런데 일본 고고학계는 그만 그 속이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강꼬꾸에는 있는 게 왜 일본에는 없단 말이야?”

당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이래야 2만 -3만년 전의 것으로 전곡리 유적에 댈 것이 못 되었다. 사실 27만년 전이면 일본이 섬이 되기도 전이고, 땅덩이의 모양도 오늘에 비하면 외계 행성처럼 판이할 때였다. 그래도 일본 학자들에게는 일본 열도 내에 전곡리만한 구석기 유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스트레스였다. ‘있을 텐데… 분명히 있을 텐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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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욕망에 편승한 것이 ‘신의 손’ 후지무라 신이치였고 놀라운 성과로 그는 일본 고고학계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그가 승승장구 욱일승천 개선행진곡을 울릴 때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발굴된 석기의 상태가 희한하게 깨끗하다거나 지각 변동이 심한 지층임에도 석기가 대부분 비슷한 깊이에서 발굴된 점 등등이 제기되었지만 깔끔하게 무시됐다. 대일본의 역사가 70만년을 에스컬레이트 한다는데 어딜 잔망스럽게.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니시오 간지 회장이 쓴 <국민의 역사>를 보면 후지무라의 ‘발견’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나시오 간지는 후지무라가 발견한 유적을 첫머리에 내세우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연대가 앞선 문명이 일본에 존재했다”고까지 주장하며 일본을 ‘세계 4대 고대문명’ 가운데 하나로 기술하고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 않은가.

그러나 시기심 때문이었을까 양심 때문이었을까 은밀한 내부고발이 있었다. 전자우편을 통해 마이니치 신문 간부에게 그 황망한 비밀이 제보된 것이다. 마이니치는 그때부터 신이치의 뒤를 쫓았고, 마침내 후지무라 신이치가 정성스럽게 가지고 온 물건을 땅 속에 파묻는 것을 촬영하는 데에 성공했다.

“조사하면 다 나와”라고 으름장을 놓는 포스와 모든 증거를 확보한 뒤 차근차근 제시하며 “다 아니까 빨리 불어”의 위력은 천양지차다. 신문에 나기 전날 마이니치 신문은 후지무라를 불러서 영상을 보여 주며 인터뷰했고 후지무라는 기절할만한 고백으로 마이니치의 열성에 화답한다. “사실은… 1974년부터 조작을 해 왔었습니다.” 그 뒤는 굳이 말하지 말자.

그런데 이 어이없는 사기극의 패턴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라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올인하여 내닫고 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역적으로 몰았던 어떤 나라의 풍경이 기묘하게 겹쳐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의 손’과 ‘젓가락질로 단련된 섬세한 손’의 공통점이 아련하게 눈 앞을 지나갈 때는 자못 아찔해지기까지 한다.

후지무라의 얘기를 하다 보니 만져질 듯 떠올라 온 낯익은 이름, 그건 황우석이었다. 황우석과 후지무라는 일종의 정신적 쌍둥이였다. 그리고 그들을 낳은 국민이라는 이름의 산모 또한 정신적 쌍둥이였다. 자신들의 컴플렉스를 속 시원하게 날려주는 과학자와 고고학자의 승승장구에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덮는 데에는 서슴이 없었던 판박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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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이 아니다. 역사 왜곡이란 대개 일본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앞서 말했듯 후지무라는 그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역사의 왜곡이라는 혐의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를 고민해 볼 여지도 충분히 존재한다. 장삼이사로부터 유명 작가 대학의 교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상당 부분 후지무라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억지의 반작용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우기는 분들은 일단 후지무라와 ‘발가락은 닮은’ 셈이다. 유사 이래 대마도를 고려 말이나 조선 말을 쓰는 이들이 지배한 적은 없었다.

일본 놈들이 명산대첩에 말뚝을 박아 조선의 정기를 죽였다고 믿는 분들은 그 의기넘치는 민족 의식 때문에 후지무라를 닮았다. 일본인들은 풍수에 관심이 없었고 어디가 명혈인지도 몰랐고 거기에 말뚝박으면 인재가 끊긴다고 믿을 만큼 미련하지도 않았으니까. 이 정도만 해도 애교로 치부하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분들이 가끔 우리말을 하는 후지무라가 되어 연속적으로 출두하시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이마에 손이 가게 된다. 아이고 두야.

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라 할 책을 쓴 소설가께서 오랜만의 침묵을 깨고 “우리 민족의 시원 수메르”를 노래할 때, 어느 대학 교수가 바이칼호수부터 동정호까지 이어지는 9천년 전의 대제국 열변을 토할 때, 우리 민족은 하늘이 내린 민족이라고 한 대학생이 어깨를 펼 때 나는 후지무라를 보았었다. 기실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재고, 민족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의 지배자 자리에 억지로 자신의 족속을 대입하며 스스로가 만들어낸 역사의 광휘에 취함이 어찌 후지무라에 뒤지랴. 그 역시 정신적 쌍둥이일 뿐인 것을.

우리 역사에 자긍심을 갖는 것과 자긍심을 가질 역사를 창조(?)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섣부른 자긍심은 씻을 수 없는 참담함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과거에게 정직하지 못한 현재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른다. 글쎄 후지무라를 보라니까.

유사사학은 그래서 위험하다. 아니 유사역사로 부르겠다. 학문의 학자를 붙이는 건 학문에 대한 모욕이다. 그 탓에 일본 고고학자들은 고고학계에서 몇 년 왕따를 당했고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요즘 들어 여러번 들리고 그럴 때마다 화딱지 나는 소리가 있다. “중국 일본은 없는 역사를 만드는데 우리는 왜 있는 역사를 없애나.” 아이고 더블로 두야. 있는 게 아니라 만든 거라니까. 그리고 중국 일본보다 더해요 당신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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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편집 : 꾸물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760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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