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5: 런던 아파트 화재의 이면 – 수다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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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BC>



런던에서 아파트 전체가 전소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런던대화재(1666년) 이후, 세계 최초의 ‘화재보험’ 제도가 생겼을 정도로 ‘불’에 민감한 영국에서 이번처럼 대형 화제가 발생한 것도 오랜만이다. 아무리 바쁜 환경 속에서도 주기적으로 화재 훈련을 실시해야 하는 소방화제법을 갖고 있는 나라, “화재는 발생 전에 예방한다.”는 표어를 가진 영국에서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1. 영국 고층아파트 = 비선호 주거 공간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처음 타워팰리스가 등장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부자’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이 주상복합단지는 로망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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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형태도 다르고 분위기도 사뭇 다르지만, 영국에서의 고층 아파트는 이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는다. 먼저, 영국에는 고층빌딩이 흔하지 않다. 그나마 런던 시내에는 높은 빌딩들이 즐비해 있지만, 런던 역시 외각으로 벗어날수록 고층 빌딩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도시계획을 함에 있어 ‘스카이라인'(공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 디자인과 그에 따른 건축법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실상은 선호하는 주거 형태와 관련이 깊다.


영국인들은 대부분 ‘하우스’라 불리는 주택 형식의 주거공간을 선호한다. 2층 혹은 3층으로 된 건물로 된 주택에서 개인 정원을 가꾸고 사는 것이 일반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주거 환경이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도 이러한 주거 형태 선호도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영국인들에게 있어 집은 나만의 ‘성’(Castle)이다. 보통 1층은 리셉션과 주방, 손님용 화장실이 있어 누군가를 초대하기에 편리하다. 하지만, 2층부터는 완벽한 개인 공간. 그래서 아무에게나 공개되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주택이 선호 공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국인들에게 아파트란, 비선호주거 형태에 가깝다.


 

2. 고층 아파트엔 빈민층이 산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Grenfell Tower’(그렌펠 타워, 24층의 다세대 아파트)는 런던의 중심가로부터 약 10km 떨어진 서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시내에서 A40(대영도서관, 마담투소 등 런던 중심을 관통하는 도로)을 따라 런던 외곽으로 빠져나가다 보면 쉽게 눈에 띄는 고층 아파트 건물. 한 층에 방 1개 혹은 2개의 ‘플랏’(한국의 연립주택 개념)들이 다섯 개씩, 총 20층에 걸쳐 100세대가 거주하는 이 아파트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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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구조다

출처 – Royal Borough of kensington and chelsea

 

그래서,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유색인종이나 난민 출신의 이민자 혹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들이라고 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영국은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 인구 부족으로 이민자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복지정책이 시작되는 시점과 맞물려 물밀듯이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감당해 낼 만한 주택이 부족했던 그때, 임시방편으로 아파트가 각광을 받았다고. 좁은 공간이지만 높이 쌓아 올리기만 하면,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할 다세대 주택. 그렇게, 영국인들에게는 비선호 주거형태인 닭장형 아파트가 외부인들에게 공급되기 시작했다.


가족도 친지도, 아무런 의지할 것도 없는 이민자들에게 영국이 ‘낭만의 땅’만은 아니었다. 무료의료혜택(NHS)을 받을 수 있고, 각종 사회복지 혜택을 받으며 자유를 누릴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이방인이다. 특히 사회 계급이 뚜렷한 영국에서 이들은 ‘하층민’(Working Class, 노동자 계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주로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에게 삶이란,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교육받지 못해 무시 받은 이들이다.



3. 예견된 시나리오


이민자들이 모여 살고 있던 이 아파트가 제대로 관리되었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 건물에는 화제 경보 시스템도, 스프링쿨러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한다. (관련기사)


오래전부터 화재 경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시정을 요청했으나 거부되어 왔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되었을 당시 최소한의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


반대로, 겉치장에는 나름 신경을 쓴 모양이다. 도시설계, 디자인이 잘 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런던에 먹칠을 할 것이 두려웠을까. 1970년대에 지어진 이 건물은 낙후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지난 5월까지 외장 수리를 완료했다. 자그만치 약900만 파운드(한화 약 130억)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어 열심히 겉모습을 치장한 것이다. (관련기사)

오랜 기간 동안 제기되었던 안전사고 문제에 대해서는 눈 감고 있었지만, 겉치장에는 민감했다. 그렇게 페인트가 채 마르기도 전, 이 고층 아파트가 잿더미로 변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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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P>


비상구도 없었던 이 건물은 아래층에서부터 불길이 솟아올랐기 때문에 막힌 계단을 뚫고 내려갈 수도 없었던 상황. 결국 새벽에 발생한 이번 화재로 수많은 이들이 생을 달리했다. 지금까지 약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4. 그러거나 말거나


아직 정확한 사상자 수도 집계가 되지 않았다. 100여 세대에 약 500-600여 명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어느 날 새벽 전소됐다. 7명, 10명, 17명 등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하다가 이제는 가늠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예상컨데 새벽에 잠자고 있던 대부분의 주민들은 생을 달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 화재로 몇백 명이 죽어 나가는 사건은 후진국에서나 가능한 일. 이번 화재로 영국의 국격은 땅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별 상관없는 눈치다.


사실 메이 총리도 사건이 발생 후 24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겨우 현장을 방문했다. 그런데 총리의 자태와 표정 보아하니 별 관심 없어 하는 눈치다. 소방관들은 커녕 유족들조차 만나보지 않고 왔다 갔다는 눈도장만 찍고 사라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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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ndependent>


오히려, 이번 화재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가정 먼저 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노동당 대표인 제레미 코빈이다. 코빈은 이번 화재사건과 관련해서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카운슬 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이번 화재경보 시스템 및 스프링클러 미작동과도 연관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실제로, 해당 지역의 카운슬(구청)에서도 소방 관련 예산이 삭감된 것을 확인했다.

 


5. 쌓여온 차별


지난 3월부터 3개월 연속으로 발생한 3번의 테러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진 틈에 벌어졌다. 노동당의 대표적인 여성 리더 이베트 쿠퍼의 말을 말을 빌리자면, 최근 영국에서 발생한 세 차례 테러의 원인이 메이 총리가 추진한 ‘무장경찰 감축 정책’이 큰 원인 중 하나다. (관련기사이번에 벌어진 대형화제사건 역시 관련 분야의 예산을 삭감하면서 벌어진 일. (관련기사)


중요한 곳에 예산을 삭감해 가면서 어디에 그 많은 돈을 예산으로 측정해주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혹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최근 드러난 사건사고를 통해 밝혀졌다. 만약,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곳이 백인이나 기타 중상류층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이라고 가정해보자. 과연 이렇게 허술한 관리 속에서 외장만 치중한 건물을 계속 유지하려 했을까.

 

한국의 삼품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같은 사고는 오래동안 쌓여온 한국의 부패정치와 연관이 깊다.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영국은 오래동안 지속되어온 하층민에 대한 무시와 멸시 천대가 결국에 이런 사고가 나도록 만든 것은 아닌지. 의회 민주주의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계급문화와 왕실을 소유한 영국의 아이러니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쩌면 더이상 설명되기 어려운 자리까지 오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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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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