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 – 수다피플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

(김병로. 서울대학교출판부, 2016. 516쪽)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것은 북한과 관련해서 늘 제기되는 문제이다. 그만큼 북한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대상이다. 아프리카나 유럽이나 먼 대륙의 어떤 나라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면 차라리 비교적 쉬울 것이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지표를 제시하며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북한을 볼 때는 의식하든 못하든 온갖 감정과 편견과 증오심과 연민이 덕지덕지 붙은 채 판단하게 된다. 적어도 북한에 대해서만은 유독 ‘객관적’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지금 이 땅에서는 어설프게 북한에 대해 ‘객관적’으로 성찰하려면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는 프레임에 걸려 매도당하기 쉽다. 우리에겐 북한하면 무조건 부정적 편견과 판단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보수세력의 윽박지름을 받게 된다. 그들에겐 ‘북한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다, 북한은 인민을 착취하는 나라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우리는 제대로 된 남한 국민이 된다. 적어도 북한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미국에서 대해서는, 일본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유독 북한에 대해서는 남한 국민이다. 우리에겐 남한은 독자적으로 대한민국으로 존재하고 북한은 조선인민공화국으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에겐 남한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이고 북한은 우리 땅을 불법 점유한 괴뢰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남한 국민이 아니다. 남과 북의 국민이 다 같은 한민족이지만 우리는 엄연히 두 개의 다른 나라에 속하는 국민이라는 현실을 어떤 경우이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거기에서 꼬이기 시작한다.

 

북한과 남한이 각각 독립된 국가로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기 시작할 때 어쩌면 남북한의 문제가 더 잘 해결될지 모른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고 들어가야 해결의 실마리가 나온다. 그렇지 않고 둘은 같아야 하며, 상대는 그 같아지려는 욕망에서 이탈하려는 불순세력이라고 매도하는 순간 해결책은 난무하다. 늘 상대를 나의 존재의 적대적 개념으로 인식하는데 어떻게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는 스스로 상대에 대해 눈을 감고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려고 노력한다. 한 마디로 청맹과니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는 북한을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시각으로 다시 보자고 말한다. 즉, 북한을 남한과 관련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우리와는 조금은 무관하게 ‘조선’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욕망이 투영된 북한이 아니라 하나의 현존하는 나라로서 말이다. 그럴 때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본 모습을 좀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고, 우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좀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뭐 그런 시각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조선은 육이오 전쟁에서 참혹한 경험을 하고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자기보호 본능으로 뭉친 전시국가이다. 그들은 아직도 휴전선 너머에 있는 미군에 두려움을 느끼고,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미국의 위협과 적대 행위로 인해 신경증적인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항상 장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잠재적인 전쟁의 위협에 대비해 전국을 병영체제로 운영한다. 경제체제도 철저하게 지방 분산적이고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며, 지역별 자급자족 체제를 구축한다. 그래서 만에 하나 적의 타격으로 한 지역이 경제적으로 붕괴되어도 그 여파가 다른 지역에 파급되지 않도록 한다. 그러기 위해 주민의 지역간 이동도 억제한다.

 

그런 지역 분산적이고 자급자족적인 경제 시스템은 초기에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지만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서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북한은 또한 민간경제와 군사경제가 이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군대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독자적인 거대한 경제조직이기도 하다. 그런 이원체제가 민간경제에 피해를 적게 끼치면서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는 동력이긴 하지만 그것이 또한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더욱이 1990년대에 겪은 대기근으로 북한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경험했다. 전 인구 중 거의 80만 가량이 아사를 한 대참사가 북한 주민들에게 준 심리적 물질적 고통은 심대했다.

 

그런 일련의 시련이 오히려 북한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현실적 위협 앞에서 내부적인 결속과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독자생존을 모색해왔고, 그 생존을 보장할 유효한 수단이 핵개발이었다. 그에 따른 국제 사회의 가혹한 제재가 북한의 개방을 억제하는 주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북한은 대외 개방을 원하지만 체제의 와해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그것을 최소화하면서 개방정책을 시도하지만 항상 미국이라는 거대 위협세력에 직면하면서 다시 내부 결속 강화로 회귀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라는 거대 악이 수십 년 동안 북한의 내부 결속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급속히 해빙의 무드로 옮겨 간다면 역으로 북한 내부의 결속이 이완되고 궁극적으로 와해될 위험도 있으므로 북한은 그 사이에서 위험한 곡예를 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은 붕괴냐 통일이냐 아니면 독자적인 발전이라는 제3의 길로 갈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대충 결론이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8426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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