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 1 편 무가설화, 산자를 위한 노래(디진자도 말을 한다) – 수다피플

제 5편, 서사무가, 산자를 위한 노래.

 

사마장자풀이

 

황천(黃泉)혼시 무가(巫歌) : 함경남도 함흥 1926년, 무녀 김쌍돌이(68세)의 황천곡(黃泉曲). 채록자 임석재.

 

송 동(童)이(첫째), 이동(童)이(둘째), 사마동이(셋째),

귀물어는(재물은), 아바님 시절에는, 잘지웟더니(잘지었더니)

저의 뉘(대, 시절)에 나서는, 사는 일이 유가득식(唯可得食, 겨우 먹고삼)이라

한날에는(하루는, 어느 날에는), 사마동이, 칠월칠석(七月七日)에, 전지(田地) 구경나가자

전뒤(전지) 구경나가니, 사방(四方)에 곡석이, 이싹(이삭)이 좃코, 잘피엿소아(잘 패였습니다)

삼형제(三兄弟) 각색(各色)이(각각이), 싹을 머더가지고와(꺽어와) 왓사와,

무단(無斷)이(신에게 고하지 않고) 먹지 못하와, 이것 바사서(찧어서)

지신(地神)님 위정하고(대우하고), 산신령님 위정하고,

조왕님(부엌신) 위정하고, 우리 농사(農事)를 새립하자고(시작하자고), 사마동이 말을 하니, 성(형)이 그러자.

 

무병장수, 가족의 축원, 득남, 재산의 증식 등을 기원하는 장자풀이입니다. 함경도에서 셍굿, 세인굿, 센풀이이라 합니다. 이 글에 실린 것은 제주 사마장자풀이(맹감본풀이)의 도입 부분입니다. 실제 굿에서 무당은 굿당(굿 하는 장소)를 정화(靖和)하는 부정굿을 한 뒤에 신을 좌정시키고 관객에게 모셔온 신이 어떻게 신이 되었는지의 풀이(서사무가)를 하게 됩니다. 열두 거리의 큰굿을 할 때에는 당연히 들어가지만 의뢰자가 요구하는 굿만을 하더라도 신을 맞이 하는 장소를 정화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굿입니다. 부정굿으로 정화한 뒤에 사마장자의 수명을 늘려 준 맹감(저승차사)이 나오는 대목에서 굿을하는 무당은 며느리의 공덕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굿 의로자는 며느리가 맹감을 대접하는 것처럼 재물이나 식량을 굿당 제단에 바치며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빕니다. 무당은 굿 의뢰자를 대신해 며느리가 되어 맹감에게 재물과 식량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무당은 지역과 장소, 사람들의 상황에 따라 다른 서사를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서사의 내용은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함흥의 황천혼시는 제주의 맹감본풀이와 무가는 모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굿이기에 내용이 유사합니다. 황천혼시, 맹감본풀이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사마장자(맹감본풀이)의 내용

 

가난하게 살아가던 사마동이의 아내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장사할 돈을 마련해 오라고 주었답니다. 하지만 사마장자는 그 돈으로 사냥을 할 총을 사왔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 짐승들을 잡으러 산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사냥이 서툰 사마장자의 총에 짐승들은 잡혀주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어느 바위에서 쉬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자신을 잘 모시면 사냥을 잘 하게 해준다는 말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혹은 걸어가는데 백골이 발에 걸리는데, 이 백골이 계속 발에 걸려 따라왔다). 그래서 사마장자는 백골을 수습해 집 앞 나무에 걸어 놓았습니다. 사마장자의 아내는 향나무물로 잘 씻고, 하얀종이(베헝겊)로 잘 싸 집안으로 모시고 들어가 잘 대접해 주었답니다. 그러자 사마장자는 아주 많은 짐승들을 잡게 되어 부자가 되었답니다.

 

그러자 백골을 더 잘 모시는 것에 화가 난 저승의 조상신들이 저승왕에게 사마장자의 죄상을 고하니 저승왕은 차사로 하여금 잡아오게 명합니다. 이것을 알게 된 백골은 사마장자에게 알리고 저승차사가 오는 길목에 푸짐한 상차림으로 대접하라고 알려 줍니다. 사마장자를 잡아 가려던  저승차사들은 배가고파 사마 장자가 차려 놓은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마장자가 나타나 저승차사들을 설득해 대신 소(닭, 말, 사슴 등의 짐승들)를 대신 잡아가게 했답니다. 사마장자 대신 소를 데려간 차사들은 자신들의 일이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명부를 고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틈에 명부보관소에서 명부를 꺼내 사마장자의 수명 삼십년(三十年) 에 획 하나를 더해 삼천년(三千年)으로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모습으로 변신해 저승차사를 따돌리며 명부의 수명을 넘어 살아 가게 됩니다. 명부를 고친 죄가 드러날 것이 걱정된 차사들은 사마장자를 가려낼 한 가지 꾀를 내게 됩니다. 어느 흐르는 물에 검정숯을 씻고 사마장자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게 된 사마장자가 차사의 모습을 보고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묻자, 숯을 하얗게 하려 씻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사마장자는 크게 웃으며, “내가 삼천갑자를 살아오면서 그런 말은 처음 듣소”라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사마장자인 것을 알아챈 차사는 그를 붙잡아 저승으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사마장자를 도와 부(富)와 장수(長壽)를 얻게 해 주는 백골은 중국 수렵의 신(神)인 (羿)설화와 관련 있어 보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달에 토끼가 살고 있다 생각하지만 중국에서는 달에 예의 아내인 상아가 살고 있다 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태양이 열 개가 떠올라 세상이 가뭄이 들자 활을 잘 쏘는 (羿)라는 자가 아홉 개의 태양을 활을 쏘아 떨어뜨렸다는 중국설화의 인물로 생각됩니다. 천제의 아들인 태양을 죽였다는 이유로 천계에서 쫓겨나 인간인 상아와 결혼하게 됩니다. 서왕모의 불사약을 구해와 다시 천계로 올라가려 했으나 아내 상아가 몰래 마시고 천계로 가려 했으나 천제가 그것을 알고 상아를 달에 머물게 했다는 (羿)의 설화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의 복숭아 나무로 맞아 죽자 사람들은 그를 귀신들의 우두머리인 종포신으로 모셨다 하는 중국의 설화를 한국 무가의 한 신으로써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한국의 무속에서는 중국의 설화뿐만 아니라, 불교 설화도 수용하고 있으며, 석가모니 또한 악인에게 징벌을 행하는 신으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함흥과 제주의 장자풀이는 비슷한 내용입니다. 충청과 호남지역의 장자풀이는 설화와 가깝게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장자못 설화에서 시주자루에 똥바가지를 넣어준 인색한 장자의 못된 성격이 단명(短命)의 이유가 되어 징벌을 받아 마땅한 인물임을 강조합니다.

 

장자풀이. 전라북도 부안군. 1912년, 무녀 박소녀, 채록자 임석재.

 

전략

 

사마도라(사마들의) 사마장자는 부모님께 불효허고, 동구간으 화목못허고, 동네방네 인심없고

사마장자 맘씨가 궃고 맘씨가 나뿌다, 사마장자 거동보소, 사마장자 죄를 무궁무궁 짔는구나.

나락(벼)은 썩어서 뒤엄(두엄)이 되고, 쌀은 썩어서 재가 되고

돈에서는 삼녹이 나고(마구 녹이 나고), 옷은 썩어서 거름이 되고

아적으(아침에) 작은 말로 주고, 밤에는 큰 말로 받어 들이고

적은 되로 주고 큰 되로 받어드리고

체게 자리 놓아도(처가 집에 빌려 주어도) 두푼 오리에다, 장리로서 걷어 들이고

세푼 오리로 장리로 받고, 사마장자 죄를 무궁허계 짔는다.

웅그전으다(옹기전에다) 말 달리기, 바단전에 물총 놓기

우는 애기 주저않히기, 우는 애기 집어 뜯기

똥 싸는 애기 주저 않지기, 새끼 밴 개 발질로 툭 차 놓고

얻어 먹던 걸인이 오면, 식은 밥뎅이 여그저그 던저 주고

사마장자 죄를 무궁 무궁 지는구나

중이 동냥을 오며는 보리 때에는 풍구끝이(풍구끝에) 꺼시락(까끄라기)을 집어 던저 주고

나락 때에는 나락 쭉젱이(쭉정이)를 던저주고

호박에다 말뚝박기, 넘으 유부녀 음해 작패

아적 새벽 바람에, 물 동으 이고가는 사람, 젖통이 잡고 입맞추기

사마장자 죄를 무궁무궁 짔는구나

 

장자의 악행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소설 연의각과 판소리 흥보가에서 놀부의 악행과 비슷합니다. 어떤 것이 먼저인가에 관해서는 정확히는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장자못 설화를 무가에서 내용이 있는 이야기로 구성된 뒤에 소설과 판소리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학계에서는 판단 하지만, 그 반대로 관객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놀부의 악행을 더 부각시킨 판소리의 흥부가를 무가에서 받아들였을 수도 있습니다. 설화와 판소리에 가까운 충청과 전라도지역의 무가가 야기의 재미를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이북지역과 제주의 장자풀에서는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천혼시에서는 조상신이 저승왕에게 사마장자의 단명을 권유하고 백골이 사마장자에게 단명의 소식을 전합니다. 장자풀이에서는 박대 받은 중이 저승왕에게 장자의 악행을 고발하고 미움 받던 며느리가 꿈을 꿔 그 해석을 통해 장자에게 단명의 사정을 알려 줍니다. 함흥의 황천혼시가 중국의 유교와 도교의 영향을 좀 더 받은 흔적일 것입니다. 제주의 장자풀이(맹감본풀이)는 이 땅의 성모(聖母)신앙적인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장자풀이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략

 

아부님 꿈 해덕을 지가 허리다

뒷동산으 행자나무(은행나무) 삼(三)동강이 갈라저, 방문 바로 뇌여 보일적으는

한 도막은 젯상을 짜라는 거요, 한 도막은 곽을 짜라는 거고

또 한 도막은 상부(상여) 짜라는 뜻이요

내가 이 집에 시집 와서 삼십년(三十年)이 지나도

개한티(개한테, 개에게) 물 한 방울 찌크러(부어) 주는 일없고

걸인 밥 한 뎅이 주는 일 못봤소.

(생략)

아버지는 그러지 않고 죄가 많십니다.

이 세상 재물을 두었다가 뉘게다 다

전장하러(전하여 관장하려)하십니까? 절반은 귀신헌티 주고 절반은 자손한티 주어도

먹고 남고 씨고 남고 헐 터이니 지은 죄나 풀어 주시요

사마장자 이 말 듣고 홰를(화를) 내어

어허 그년 괫심허다. 넘으 자식이라 꿈 해덕히도, 숭칙허게(흉칙하게) 한다.

에라 이년 좇아내라.

 

장자못 설화에서의 장자는 그의 재산과 함께 홍수로 물에 잠겨 죽고 며느리는 바위가 됩니다.  맹감본풀이에서는 장자에게 직언하다 친정으로 쫓겨나게 되는데, 친정으로 가지 않고 저승차사가 오는 길목에 음식을 잘 차려 대접해 사마장자의 수명을 늘려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성이 인간설화에서는 소극적 역할이었던 반면에 무가에서는 성모신앙적인 여성성으로 장자의 악행과 그의 수명을 늘려주는 적극적 역할입니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무가의 구송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함흥의 황천혼시와 제주의 맹감본풀이(명관命官 : 저승차사)는 서사구조가 비슷합니다. 그리고 굿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같습니다. 백골과 저승차사에게 풍요와 무병장수를 위해 기원합니다. 충청과 전라도의 장자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점이라면 함흥과 제주의 무가가 종교적 특성에 충실하다면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는 설화와 가까운 이야기에 중요성을 둡니다.

 

그래서 완전히 나눌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충청과 전라도 지역은 농경 지역 특색이 반영되어 며느리가 농업의 여신인 복희씨와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 주는 여와의 상징과 같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성모신앙적 특성이 강조되는 동해안과 제주의 장자풀이와 연결됩니다. 또 제주와 동해안의 장자굿이 제의적 성격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유교적 제례형식을 강조하는 함흥지역의 장자굿과 연결됩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선조들의 정신문화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자못설화와 유사한 “안락국전”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락국전

 

세존께서 우담바라화와 연화를 심어 즐기시더니, 일곱해 가뭄을 만나 꽃이 시들어 승여래바라문을 시켜, 대원국왕 사라수대왕과 왕비 원앙부인에게 인걸립 시주를 보내, 꽃 밭 수레를 할 사람을 구하니 사라수대왕이 원앙부인을 보내려 했습니다. 그러자 백관들이 말려 팔선녀를 대신 보내게 됐습니다. 다시 꽃이 씩씩하게 피기 시작하니 세존께서 바라문화주를 보내 사라수대왕과 원앙부인을 불러 오게 합니다.

 

안락국에 당도해 자현장자의 집에 머물다 이튿날 떠나려 했으나 원앙부인이 오랜 여행으로 발병이 난 상태에다 임신한 몸으로 더 이상 여행을 함께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자 원앙부인은 자신을 팔아 그 돈으로 세존께 드리자고 남편 사라수대왕에게 말합니다. 그래서 사라수대왕은 원앙부인을 자현장자에게 금화 5천냥에 팔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 아들이면 “안락국”, 딸이면 “효양녀”라 지으라 하며 사라수대왕은 서천의 세존께로 가게 됩니다.

 

사라수대왕이 떠나자 자현장자는 원앙부인에게 자신의 첩이 되라고 강요합니다. 원앙부인은 아이를 낳거든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합니다. 아들 안락국이 태어나자 이번에도 자현장자는 첩이 될 것을 가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앙부인이 거절합니다. 그러자 자현장자는 내기를 해 원앙부인이 이기면 다시는 그 일을 묻지 않겠다고 합니다. 단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경우에 자신의 첩이 되어야 한다면서 삼일 내에 옷감 열 다섯 필을 짜라고 합니다. 원앙부인은 제의를 수락해 옷감을 짜기 시작하려는데,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원앙부인을 도와 옷감을 모두 짜게 되었습니다.

 

안락국이 십여세 되던 해에 어머니에게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물으니 모든 일들을 이야기 해줍니다. 그러자 안락국은 아버지를 찾아 서천으로 가기 위해 자현 장자의 집에서 탈출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자현장자는 천리를 보는 목동과 만리를 보는 부동눈을 시켜 잡아오게 합니다. 다시 탈출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쫓아오지 못하게 강을 건너 도망을 칩니다. 그렇게 탈출에 성공한 안락국은 결국 아버지를 만나 그 동안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어머니 원앙부인은 자현장자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거라 말하니, 사라수대왕은 안락국에게 적년화, 청년화, 백년화 세 개를 주어 사용법을 알려 준 다음, 어머니 원앙부인을 살려 데려오라고 합니다.

 

안락국의 예상대로 원앙부인은 자현장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어느 수풀에 버려졌답니다. 자현 장자의 집 근처에서 안락국은 목동이 부르는 노래에서 어머니가 어느 수풀에 버려졌는지 알아내게 되고 그 수풀로 향합니다. 안락국은 어머니의 뼈를 모아 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어머니를 살려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는 서천으로 어머니 원앙부인과 함께 떠납니다. 부동눈에게 그 사실을 전해들은 자현장자가 두 모자를 쫓아와 잡으려 하니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자현장자의 집은 깨끗하게 없어지고 부동눈은 실명를 하게 되었답니다. 가족이 다 모이자 그들은 세존을 찾아가니, 아버지 사라수대왕은 아미타불이, 원앙부인은 미륵불, 안락국은 대세지보살이 되었다 합니다.

 

불교설화 [안락국태자경]이 소설화 된 것이 안락국전입니다. 불교설화의 모습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기는 했습니다. 또한 자현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장자못설화와 유사합니다. 장자못 설화가 먼저인지 안락국태자경이 먼저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장자못설화에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며느리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설화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 입니다. 앞서 바위설화편에서도 언급했듯이 바위는 무속의 제의와 관련이 깊습니다. 지금도 무속인들은 바위 아래에 기도터를 만들고 산신이나 성모신을 모시기도 합니다. 장자풀이가 안락국전이나 불교설화에서 장자 모티브를 가져왔을 수도 있지만 망부석 이야기를 더해 무속화∙토착신앙화 했을 수도 있고 장자못설화에 노인이나 거지가 장자의 집을 찾았던 부분이 승려의 탁발로 변한 것은 토착신앙이 불교를 받아들인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무가에서 안락국전을 완전히 수용한 이공본풀이라는 서사무가가 있습니다. 이공은 세존이 계시는 서천의 꽃밭을 감독하며 인간의 수명과 사후세계의 관리자를 의미하는데, 이공의 직책을 어떻게 맡게 되었는가의 내력을 풀이해주는 무가입니다. 무가의 포용성을 통해서 이 땅에 어떤 종교가 들어왔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선조들의 사고의 유연함도 알게 해줍니다.

 

지금의 서사무가는 제의의 신령스러움 보다는 관중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굿에서 무당의 춤은 위엄과 신령스러움을, 악사들의 음악은 흥겨움을, 무당의 서사무가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는 이야기로 변화해 왔습니다. 굿은 무당과 악사, 관객의 참여가 조화를 이뤄 행해졌습니다. 조화로운 공간과 시간 속에 신화화된 신들을 무속인이 강신시켜 청중들과 신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한국의 굿입니다. 굿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8546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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