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알쓸신잡 어벤져스 비긴즈 :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그리고 나영석 – 수다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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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걸겠다.


스티브잡스가 남긴 이 말에 가슴이 울렁거려본 사람 꽤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뭔가 멋지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세상은 들썩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 조그만 것에 오만 것을 다 쑤셔 넣은 거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것은 엄청난 기술 집약이었다. 그런데 그것의 창조 비결이 인문학이라고 하니, 또 한 번 신선한 충격일 수밖에. 잡스 가라사대, 인문학이 곧 돈 이니라. 애플의 주가가 하늘을 찌를수록, 잡스의 잠언은 현대인의 황금률이 되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의 식사자리에서 의미 있는 질문을 주고받을 깊은 내공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학창시절 도덕이나 윤리교과서에서 잠깐 스치고 마는 그분의 철학을 계속 붙잡고 있기엔, 삶의 영역에서 터득해야할 생존의 기술이 더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분과 다시 마주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변론> 이나 <프로타고라스>를 펴보아도, 짬을 내어 읽기엔 문장이 너무나 퍽퍽하다.



인문학 대중화의 시대



이 점을 발 빠르게 파고든 것은 방송이었다. 방송국들은 예능에 인문학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을 앞 다퉈 편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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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으로 풀어내는 말랑말랑한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기량을 발휘한 건 학원가 스타강사들이었다. 그들의 무기는 사교육 시장에서 갈고닦은 전달력이다. 그들의 직업은 내용을 쉽고 흥미로우며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특화되어있다. 사교육 시장은 말 그대로 시장이다. 철저히 수요와 공급에 의해 선택받고 도태된다. 화려한 입담과 쇼맨십으로 그곳에서 수년 동안 최고의 위치를 고수해 온 최진기, 설민석, 최태성같은 강사들은 ‘인문학 대중화’ 흐름을 주도할 검증된 인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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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의 장기인 전달력에는 치명적인 불안요소가 내재되어있었다. 강연내용을 학생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자극적으로 설명하는 기술이 문제였다. 강의 내용에 대한 오류와 반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대치동 강의실에서는 획기적인 접근이었을지 모르지만, 대중을 상대하는 책임 있는 강연에서는 부적절한 부분이 계속 노출되었다.


전문성의 부재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학원 강사는 직업 특성상 대학 전공과 관계없이 강의 과목 선택이 유연하다. 거기다 해마다 바뀌는 대입제도 탓에 인접 과목 간 분리와 통합이 잦다. 이런 환경에서 전천후 강사로 성장한 그들은 비전문 영역을 강의 대상으로 다루는 데에 익숙했을 것이다. 전달력 과신은 강연의 질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6년 5월 5일에 방영된 O tvN <TV특강 어쩌다 어른> 32회, 최진기 강사의 ‘군마도 오류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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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M 관계자는 “온라인에는 이양원 작가의 ‘군마도’가 장승업의 그림으로 소개된 곳이 많다, 온라인으로 정보를 찾다 보니 간과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정보가 지식으로 둔갑해 전파를 탄 이 사고는 인문학 대중화를 소수의 능숙한 전달자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무리가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인문학 예능의 새로운 대안 –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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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tvn 새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에서는 누구도 강연을 하지 않는다. 각 분야에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눠먹고 그저 논다. <알쓸신잡>의 구성을 정리하자면 ‘공부 좀 한 아재들이 여행에서 거나하게 취해 아무 말이나 막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으로 대책 없는 구성이지만 세간의 반응은 뜨겁다. 시청률 6.6%(닐슨 코리아 기준)으로 케이블 종합편성 채널 전체 시청률 1위다. 나영석PD와 <알쓸신잡>을 공동 연출하는 양정우PD는 “이 프로젝트가 처음에는 ‘인문학 어벤저스’였다. 이야기를 듣다가 지식도 쌓을 수 있는 그런 것을 해보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네 명의 아재 박사(정치/경제-유시민, 미식-황교익, 문학-김영하, 뇌과학-정재승)가 마구잡이로 늘어놓는 수다는 흥미롭다. ‘거북선 용머리는 왜 붙어있는가?’에서 시작된 수다는 조선과 왜군의 해군 전법 차이, 조선 의병의 존재의미, 무굴제국의 몰락과 네루의 <세계사편력>, 양반 제도, 호주제, 부계사회의 생물학적 허점을 거쳐 모계 미토콘드리아에 이른다. 이 밖에도 꼬막무침을 논하다가 그 조리법이 담긴 조정래의 <태백산맥>으로 넘어가고 이야기는 어느덧 26살 청년 유시민이 교도소에서 써내간 항소이유서에 이른다.


그들이 만드는 지식의 향연은 흥미롭고 경쾌하다. 한 사람의 질문에 새로운 정보를 더해지고 거기에서 확장된 논의가 또 다른 질문을 생산해낸다. 네 명의 인문학 어벤저스가 벌이는 변화무쌍한 대화는 즉흥연주처럼 순간적이고 자유롭게 흘러간다. <알쓸신잡>의 흥행비결은 “어떻게 저런 걸 다 알지?”라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출연자들의 지적 매력이다. 



인문학 어벤저스 비긴즈: 선천적 삐딱맨들



스파이더맨에게 찌질한 학창시절이 있었듯이, 헐크에게 학대받던 암울한 유년기가 있었듯이 히어로의 생애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이 어떻게 그토록 지적인 매력이 터지는 인간이 되었는지 알아보자. 



읽고 쓰고 저항하는 남자. 유시민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고문을 배우면서 공부도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신라 향가나 고려가요, 이육사 선생과 만해 선생의 시를 암송하는 것이 쉽고 재미있었다. 그때는 대입 본고사가 있어서 교과서 말고도 다른 책을 읽었다.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그렇다. 그는 그냥 공부를 잘하는 인간이었다. 재미있다는데 어쩌겠는가.  



대입원서를 쓸 때 아버지가 영문과를 권하셨다…영문과에서 영어를 익히고 유럽이나 미국에 유학을 가 서양철학을 공부한 다음, 돌아와 동양철학을 더 공부하라는 것이었다…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동서양 철학을 통합하는 학자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권고를 외면했다. 그때는 인생도 세상도 잘 몰랐다…나는 별 돈들이지 않고 빨리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법학과가 포함되어있던 사회계열을 선택했다. 시험을 잘 보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선택이었다. 환갑을 눈앞에 두었던 아버지는 이상주의를 추구했는데, 고작 열아홉 살이었던 나는 현실주의를 택한 것이다.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나 그는 결국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법학과를 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에 제일 편리한 학과’였기 때문이다. 죄 없는 사람에게 쉽게 벌을 주는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영혼을 망칠 수 없다는 것이 스무 살 유시민의 선택이었다.



이런 비뚤어진 세상을 향해 소리 한번 지르지 않은 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면 내 청춘이 너무나 비천하고 남루해질 것 같았다. 혹시라도 대한민국이 군부독재에서 민주주의로, 가파른 역사의 강을 건너가는 데 도움이 될 돌덩이 하나를 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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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가 선택한 길은 읽고 쓰며 저항하는 것이었다. 청년 유시민은 그 이후에 두 번의 옥살이를 했다. <항소이유서>를 쓰고 시작한 옥살이가 끝나고 나서야 대학에 돌아갔다. 다시 정권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썼다. 이름을 숨긴 채 드라마 대본도 쓰고 잡지에 기고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호구지책이었다. 읽고 쓰며 저항하는 일은 그에게 직업이 되었다.



글쓴이 유시민은 마흔 고개를 넘어선 중년 남자다. 권력에 대들었다가 감옥 구경을 하기도 했지만 불 같은 ‘혁명정신’이나 권력에 대한 동경은 가져본 적이 없는 천성적인 소시민이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이며, 거기에서부터 생겨나는 슬픔과 노여움이다.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읽어대는 잡독 습관과 본의 아니게 공부하게 된 경제학, 그리고 역사의 탁류 속에서 만난 이런저런 우연 때문에 어쩌다 보니 글쟁이로 밥을 먹고 사는 신세가 되었다 

유시민 <Why not?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읽기> 작가소개 中




불의한 세상에서 법관이 되기를 거부한 스무 살의 삐딱한 청년. 그때처럼 중년에 막 접어든 유시민은 여전히 슬픔과 노여움을 붙들며 읽고, 쓰고, 저항했다. 먹고사는 문제에 더 무겁게 짓눌리면서도 철들 생각이 없는 글쟁이로 사는 길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글쓰기로 되돌아왔다. 정치가 싫다거나, 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 때문만은 아니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다. 인생이라는 너무 짧은 여행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아서다. 그래서 더 절실한 마음으로 자문해본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이 삶은 훌륭한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괜찮은 것인가? 오늘 하루의 모든 순간들은 내게 의미가 있었는가? 나는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지금 하는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어떤 평가를 하게 될까? 내 마음이 이렇게 대답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나 글쓰는 일로 돌아가자. 마음이 설레고 일상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자.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정치인 유시민의 시간은 그에 삶 전체에서 길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 시간에 대한 평가와 반추는 그의 지적 매력을 가늠하는 데에 큰 관계가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조직하고 배열하는 것이다. 지극히 지적인 행위다. 더구나 무엇인가에 저항하는 글은 글쓴이를 외롭고 위태롭게 한다. 그래서 더 지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그는 그의 삶의 대부분을, 그리고 지금까지도 시대를 고민하며 읽고, 쓰고 있다. 그가 인문학 어벤저스의 큰형님 자격이 마땅한 이유다.



까칠한 미식가 황교익



tvn<수요미식회>는 좀 특별한 음식프로그램이다. <수요미식회>는 마냥 맛있음을 전도하는 먹방 프로그램이 아니다. 거기에는 비평이 있다. 


그 비평의 중심은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이다. 시식이 끝나고 패널들의 소회가 돌고 돌면 그에게 마이크가 넘어온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음식의 유래, 재료의 특징, 조리의 방법, 맛의 감각 등등 방대한 내용으로 음식을 평한다. 어찌 보면 입맛 까다롭고 고약한 중년 아저씨 같다. 


유시민이 서울대 프락치사건으로 복역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1987년, 황교익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준생이 되었다. 막연히 글 쓰는 직업을 원했으나 그것으로 돈이 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기웃거리던 미술평론을 집어치우고 밥벌이를 위해 농민신문에 입사한다. 기자 2년차, 청년 황교익은 일생일대의 승부를 건다. 바로 음식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직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음식을 다루는 것에 시선이 곱지 않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원치 않았던 80년대 말, 미식을 논한다는 것은 사치로 비쳤다. 하지만 그가 했던 공부는 음식의 맛만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음식이 혹은 어떤 재료가 언제부터 어떤 유래로 식탁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었다. 


전인미답의 길에 발을 들인 황교익은 스스로 스승이 되어야 했다. 음식을 이해하기 위해 인류학, 역사학, 진화론, 심리학을 혼자 공부했다. ‘우리는 왜 그것을 먹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함이었다. 



전문적인 글쟁이가 되려면 그 분야의 책을 다 읽어야 해요. 패션 전문 기자가 되려면 섬유부터 패턴, 색상, 봉제, 디자인 등등 다 봐야 하잖아요. 똑같아요. 음식도 식재료부터 가공, 위생, 유통 온갖 분야가 있어요.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말 그대로 안 다음에야 글을 쓸 수 있는 거죠.

ARENA 인터뷰 <황교익의 한 그릇>




황교익은 까칠한 사람이다. 2015년 불어 닥친 먹방 열풍에 그는 홀로 열심히 초를 쳤다. 한참 주가를 올리며 팬덤을 쌓아올리던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과한 설탕 사용에 감히 일침을 놓는가 하면, 음식 탐사 프로그램 채널A<먹거리X파일>의 조작 의혹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음식 방송에서 출연자가 으레 하여야 하는 말이 있다. “이 재료는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하던 것이고..” “여기에는 몸에 좋은 어떤 성분이 있어..” 전통과 건강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방송을 하면서 이 두 요소를 제거하거나 뒤집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진상과 건강에 대한 헛된 정보가 넘친다. 방송 제작진과 말을 나누면 그들도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제법 안다. 이 분야에 그래도 ‘먹물’들이 많은 까닭이다. 알고도, 알면서도, 알 만한 사람들이, 방송은 엉뚱하게 제작을 한다. 이유를 물으면 답은 똑같다. “그래야 시청률이 나와요.”

황교익 블로그 <그래야 시청률이 나와요> 中



황교익의 까칠함은 그의 전문분야에만 맴돌지 않는다. 포럼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공개연설을 한 이후 방송국 출연이 취소되자 이를 야무지게 공론화시켜 항의했다. 전투력에 있어서 유시민에 못지않다. 그래서 그런지 <알쓸신잡>에서 메뉴선택을 두고 벌이는 두 까칠한 중년의 티격태격은 예능의 틀에 잘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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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황교익 낚시 베프 인증>



인류가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고살아왔는지에 대한 탐구는 그 자체로 인문(人文)이다. 그 길에 스스로 뛰어든 사내가 성실히 쌓아온 지식은 <알쓸신잡>수다의 풍미를 한층 끌어 올린다.



감성근육 트레이너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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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될 거예요.”


강연 중인 김영하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말년 병장에게 이렇게 답한다. 의외의 대답에 좌중이 웅성거린다.



지금은 성공하기 굉장히 어렵다. 지금 여기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보란 듯이 성공할 수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있다하더라도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 

 SBS <힐링캠프>


유시민이 교도소에서 박경리의 <토지>를 거듭 읽고, 대학교 졸업반 황교익이 뭐 해서 먹고 사나 낑낑대던 1986년, 김영하는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사병 출신 갑종 장교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엘리트 군인의 길을 걷길 바랐다. 아버지의 원대로 그는 학군단에 지원했다. 혹독한 1년 반의 학군단의 훈련을 견디고 마지막 훈련만을 남긴 어느 여름, 김영하는 문득 ‘이건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 길을 계속 걸었을 때를 생각했다. 훈련을 마치면 졸업을 하고 장교가 되어 임관을 할 것이다. 명문대 학군단 출신이므로 제대 즈음에는 아마 이미 어느 대기업에 어렵지 않게 합격되어있을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며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김영하는 그 길로 학군단 사무실에 찾아가 장교 후보생을 그만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인생 같지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동안의 고생이 아깝지 않냐 며 말리는 동기후보생들에게 그가 남긴 말은 더 걸작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아깝다.”


그는 그 날로 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습작했다. 그 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병으로 군대를 다녀올 때가 되어서야 그의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자기의 젊음은 그토록 멋대로 사용해놓고 김영하는 지금의 청년에게 어차피 너는 잘 되기 힘들다며 비관한다. 그러나 이유있는 비관이다. 그가 진정 염려하는 것은 청년의 내면이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몸 뉠 작은 공간 하나 얻기도 쉽지 않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는 노동력뿐만 아니라 영혼과 자존심마저 요구한다. ‘뭐 해 먹고 살아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가 권하는 내면을 지키는 방법은 자기만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자기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감성 근육을 길러야한다. 몸에 근육이 없으면 때 쉽게 피로가 회복 되지 않듯이, 감성 근육이 없으면 무언가를 느끼려고 해도 금방 피곤해진다. 

SBS <힐링캠프>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수백 가지가 있습니다. 되어야만 하는 자기만의 단 한 가지 이유가 한 사람을 예술가로 만듭니다. 될 수 없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예술가가 그렇게 해서 예술가가 된 겁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뭘 해서 뭘 하려는 게 아니죠. 예술은 최종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고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죠. 술과 약물의 도움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예술가가 되십시오. 지금 당장.


김영하 2013 TED <Be an artist, righ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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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알쓸신잡>에서 감성 근육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직접 보여준다. 그를 거치면 햇빛이 바삭바삭 해진다. 이순신을 극적인 캐릭터로 살려내고, 한글소설을 쓰며 해방되는 허균의 내면을 훔쳐본다. 무뚝뚝하던 소설가가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신나게 수다를 떠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한 번쯤 자신의 감성 근육을 매만져 보게 된다. 



에이스 정재승



앞선 세 명의 삐딱한 히어로들에 비하면 정재승은 심하게 모범적인 청년기를 보냈다. 역시 공부를 잘했다. 과학고에 갔다. 수능이 보기 싫어 한 해 일찍 카이스트에 들어갔다. 박사학위를 받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었다. 고작 스물일곱이었다. 인문학 어벤저스의 진짜 사기캐는 정재승이다. 그의 지성의 원천은 독서였다. 



고등학교 때 학교 도서관을 지키면서 책 정리를 맡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일부러 과학책 말고, 문학이나 철학 책을 읽었죠. 내용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읽고 있는 내가 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했듯, 책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시험, 대학, 성공 외에도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추구해야 하는 문제들을 놓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세 가지 결심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내가 앞으로 평생 추구할 질문을 이 도서관에서 찾아보는 것이었어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정재승의 서재는 일요일의 공동묘지이다>




하지만 운명은 히어로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인문학 어벤저스 막내의 삐딱선은 뒤늦게 발현된다.



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세상이 시키는 대로 충실한 교과서적 삶을 살았어요. 술·담배도 하지 않고, 커피도 안마셨고(술과 담배는 지금도 안한다) 오락실이라는 데도 대학 4학년 때 처음 가봤어요. 기존 시스템에 대해 강한 저항감과 분노를 느끼면서 일종의 ‘삐딱선’을 타게 된 것은 대학 4학년 때 실연을 하고 나서죠. 어떻게 보면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는데, 전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나 같지 않다는 것을 몰랐어요. 완전한 청정지대에 살았다고 해야 하나? 날 둘러싼 시스템을 충실히 따르며 살았는데 그게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세상의 위선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됐죠. 이후 4~5년간 방탕의 끝을 달리면서 굉장히 반사회적인 행동들을 탐닉했어요. 하하.

경향신문 인터뷰 [김제동의 똑똑똑](8)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남들 속이 자기와 같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이 천재소년은 타인의 머릿속에 무한한 호기심을 품게 된다. 사람들의 속이야기를 듣기위해 먹지도 못하는 술자리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급기야 물리학으로 뇌를 연구할 결심을 한다. 이 역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길을 찾아 미국 의과대학 정신과에 진학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국에서는 통섭과 융합 학문이 각광받고 있었다. 운빨까지도 끝내주는 막내 히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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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그는 우리 사회에서 보기 힘든 ‘통섭형 인간’이다. 가령 과학, 예술, 인문학의 세 분야를 자유로이 횡단하면서 그는 ‘과학의 눈으로 본 예술’, ‘인문학의 눈으로 본 과학’ 등 다양한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낸다

진중권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 크로스 seaso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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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알쓸신잡>은 정재승을 위한 프로그램인지도 모른다. 그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한 과학자다. 그가 풀어낼 수 있는 지식의 범주는 독보적이다. 이순신의 숨결 잔존량을 계산하는 짓, 아니 계산하는 것은 오직 그만이 끌어 낼 수 있는 곁가지다. 장어를 두고 나머지 세 명이 아는 바를 아무리 떠들어봐야 ‘장어를 먹으면 진짜 남자들의 정력이 좋아지는가?’같은 핵심 질문은 정재승 없이 해결하지 못한다. “정력은 그렇게 함부로 올라가지 않아요.”라는 그의 이죽거림에서는 예능감도 돋보인다. 그 덕분에 다보스포럼이 인정한 ‘차세대 글로벌 리더’에게 장어와 정력의 상관관계를 물으며 낄낄대는 장면이 연출된다. 인문학 어벤저스에서 정재승이 단연 에이스인 이유다.



이 그림의 설계자, 닉퓨리 나영석




다른 프로그램은 수업을 하는 듯 하는데 우리 프로그램은 그게 아니라 네 분의 시너지가 있다. 이야기가 무궁무진 퍼나가는 힘이 있다. 그런 부분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 나영석 PD

2017년 6월 1일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간담회 中


나영석PD는 강연장에서 갈 곳 잃은 인문학을 야외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쓸데없는 잡학’ 이라는 제목에 방점을 찍어두었다. 덕분에 인문학 어벤저스는 지식을 다루는 엄숙함을 집어던지고 자유롭게 잡학 다식함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강연장을 뛰쳐나온 인문학은 가뿐해졌다. 한번쯤은 살갗에 스칠법한 삶의 고민들을 신명나고 고급지게 풀어낸다. 알쓸신잡의 인문학은 시청자를 ‘지금껏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다니… 그동안의 당신의 삶은 껍데기에 불과했어요’라고 꾸짖지 않는다. ‘이 정도 역사도 모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 할 수 없다’고 다그치지 않는다. 우리 가까운 곳에 놓인 사소한 질문도 충분히 의미 있음을, 그것들이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조금 삐딱한 아재들이 즐거운 수다로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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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아리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89969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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