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수다피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임호경. 열린책들, 2014(2013). 508쪽)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100세 노인>은 바로 알란이라는 한 노인이 100세 생일날 양로원을 탈출해 벌이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플롯은 그 노인이 양로원을 탈출한 이후 벌이는 기괴한 모험과 그 사이 사이 끼어드는 과거의 사건들을 자유롭게 오가며 전개된다. 쉽게 말해 1905년에 1915년의 세계사가 그의 이야기에 녹아 있다. 그는 지난 100년간의 세계사에서 중요한 거의 모든 사건에 어떤 형태로든 간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육이오 전쟁의 현장에도 있었다.

 

양로원을 탈출한 노인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한 젊은이가 화장실에 가려고 잠시 맡긴 가방을 생각 없이 들고 무작정 버스를 탄다. 그리고 가는 도중에 아무 곳에나 내려 우연히 만난 율리우스라는 사람의 집에 하룻밤 묵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가방을 열어보니 5000만 크로나라는 엄청난 돈이 쏟아진다. 실상 그 돈은 갱단의 돈이다. 두 사람은 그 돈을 반반씩 나눠 갖기로 하지만 그 때 가방의 주인이 찾아온다. 그들은 그를 기절시켜 냉동실에 감금하고는 잊어버린 채 두었다가 다음날 들여다보니 얼어 죽어 있다. 그들은 시신을 철로 정비차에 싣고 가서 한 국제 수화물 취급소에서 화물상자에 넣어 버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도넛을 먹기 위해 가게에 갔다가 그 주인에게 차를 구하고 그를 운전사로 고용하지만 곧 그 사람과 셋이 돈을 나눠 갖기로 하고 함께 여행한다. 그렇게 함께 여행하는 사람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난다.

 

한편, 경찰에서는 그의 실종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게 되어 마침내 관할 검찰까지 나서게 되지만 경찰과 검찰은 늘 한 발 늦게 그의 뒤만 따라다니게 된다. 다른 한편 부하에게 돈을 찾아오라고 시킨 갱단의 두목은 부하가 실종되자 돈을 찾기 위해 다른 부하를 보내지만 역시 실종되니 마침내 본인이 직접 돈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결국 알란의 일행을 찾아내지만 ‘예쁜 언니’의 코끼리에게 깔려죽게 된다. 그 일행은 시신을 자동차에 집어넣어서 폐차장으로 보내 역시 해외로 반출되게 한다. 그들은 이제 그 돈을 완벽하게 차지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사이에 알란의 지난 백 년간의 활동이 하나둘 씩 드러난다. 이미 잠깐 언급했듯이 그는 지난 20세기의 중요한 세계사적 사건에는 거의 다 간여했다.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중국국공 내전은 물론이고 미국과 소련의 핵개발도 그의 작품이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그는 열 살에 한 폭약제조 회사에 취직을 하며 열다섯 살에는 자신의 폭약회사를 설립하고 폭약실험을 하다가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스페인에서는 공화파를 위해 다리를 폭파하는 일을 하다가 자신이 폭약을 설치한 다리를 프랑코가 건너려 하자 목숨을 구해준다. 미국에서는 핵폭탄을 개발하는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웨이터로 일하며 핵폭탄 제조의 결정적 팁을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트루먼의 친구가 된다. 또한 쑹메이링의 국민당을 돕기 위해 중국에 가서는 마오쩌뚱의 아내 장칭을 구하게 되고,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의 친구가 되지만 반동분자로 몰려 블라디보스토크로 유배를 간다. 그곳에서 탈출해 러시아 장군복으로 위장해 전쟁 중인 북한으로 가서는 김일성과 마오쩌뚱을 만나게 되며 예전에 장칭을 구해준 덕에 마오쩌뚱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동생 아인슈타인을 만나 친하게 되며 아인슈타인의 부인 아만다가 프랑스 대사가 되자 따라가서 도와준다.

 

사건은 그런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런 그의 삶의 여정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삶은 그대로 20세기 세계사이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알란을 통해 한 시대의 세계사를 조망해보는 것이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이지만 그 터무니없음 속에 진실이 있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때로는 진지해지고 때로는 그 황당함에 웃지만 그 이야기들이 단순히 터무니없음을 넘어서 진지하게 와 닿는다. 지난 백 년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그 핵심적인 사건들이 그의 이야기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필연이라든가 인과관계로 설명하려는 모든 사건들이 실제로는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만 역사가들이나 관련자들이 모든 사건을 필연이나 인과관계로 설명하려 애쓸 뿐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많은 사건은 우연히 시작되었고 그것이 엄청난 파장을 미칠 수 있다. 인과관계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낸 일종의 편집증인지도 모른다.

 

역사의 진실은 아무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모두가 진실의 조각난 파편들일 뿐이다. 그러한 파편들을 맞추고 이어서 만든 것이 역사이고 소설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역사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이고 문학은 허구를 바탕으로 한 사실이라고. 그런 사실을 이 소설은 태연하게 드러내 보인다.

 

이 소설은 허구라는 것을 너무나 명백하게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성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허구가 단순히 허구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작가가 기자출신답게 그의 이야기에는 많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이 사실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는 그런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허구적인 구성으로 과감하게 뒤섞어버림으로써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을 완벽하게 지워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이 소설을 소설로 읽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너무나 어수룩하고 평범한 한 인물을 통해 그려내는 20세기 세계사의 파노라마는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 역사는 위대한 인물의 역사가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 대부분의 위대한 인물들은 희화화 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모자라거나 사기꾼이거나 뻔뻔한 인간들이다. 그런 인물들 사이에서 오히려 알란은 빛을 발한다. 결국 세계의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이 아니라 알란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끌어간다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은지 모른다. 그 역사는 의도된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하찮은 이야기들이 엮어서 만들어내는 한 바탕 무지갯빛 이야기이다.

 

그러면 그들의 모험의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 코끼리를 포함한 알란 일행은 모두 인도네시아에 있는 옛 친구인 아인슈타인의 부인 아만다의 초대로 발리에 가서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알란은 오래 전 과부가 된 아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멋진 인생이다. 아니면 호접몽인가?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19091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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