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merican Crime – 수다피플

An American Crime
(감독: 토미 오헤이버, 2007)

 

  때로는 인간의 평범한 상상력으로는 닿기 힘든 현실이 있다. 거창한 우주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본능이다. 누구에게든 어느 정도 악한 욕망은 잠재되어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현실로 표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본능이 깨어날 때 결과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끔찍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악한 본능이 어떻게 깨어나게 되며, 일단 깨어나면 얼마나 잔인하고 어떻게 도덕성을 마비시키는지 잘 보여준다. 그것도 히틀러의 범죄와 같은 거대한 정치적 음모가 개입된 악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일상에서 보여줄 수 있는 악이다. 그 악은 발현 형태와 규모만 다를 뿐 히틀러의 악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1965년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일어난, 거트루드 배니제프스키(Gertrude Baniszewski)가 자신의 집에 기숙하는 16살의 실비아 리킨즈(Sylvia Likens)를 학대해 살해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실제 법정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므로 비교적 사실에 충실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는 죽은 주인공 실비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야기의 발단은 아주 평범하다. 곡마단에서 일하는 한 부부가 두 딸 실비아와 제니를 그 애들이 교회에서 사귄 사람의 집에 두 달간 맡긴다. 아이들을 맡은 거트루드는 허드렛일을 하며 혼자서 힘들게 여섯 아이를 키우지만 늘 돈에 쪼들리는데다가 그나마 번 돈은 젊은 정부에게 털리고, 알콜과 약물 중독에 병까지 앓고 있다.
  아이들을 맡은 거트루드는 처음에는 잘 보살피고 실비아와 제니도 그녀의 아이들과 잘 어울려 지내며, 특히 실비아는 거트루드의 큰딸 제니와 친밀하게 지낸다. 그러나 양육비가 제때 도착하지 않자 거트루드는 두 아이를 매질한다. 그런 사이 제니는 어느 날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실비아에게 털어놓게 되고, 그 후 실비아는 제니가 애인에게 성폭행을 당할 위험에 처하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엉겁결에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제니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실비아가 폭로한 것에 앙심을 품고 어머니에게 실비아가 친구들에게 자신이 걸레라는 소문을 냈다는 거짓말을 한다. 비극은 그 거짓말에서 시작된다. 그 말을 들은 거트루드는 실비아를 학대하기 시작해 마침내 그녀를 지하실에 가둔 채 상상할 수 없는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
  문제는 그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집 아이들과 이웃 아이들이 거트루드의 만행에 가담하고, 그런 사실을 눈치 챈 이웃들은 남의 일이라며 외면한다. 그뿐만 아니라 거트루드는 불에 달군 바늘로 실비아의 배에 ‘나는 창녀이고 그것이 자랑스럽다(I’m a prostitute and proud of it)’는 글자까지 새겨 넣는 만행을 저지른다. 실비아는 20일 이상이나 감금된 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학대를 당하다가 죽는다.
  거트루드의 범죄에 가담한 모든 아이들은 법정에서 무서워서 가담했으며 무서워서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실비아의 동생인 제니마저 거트루드의 폭력이 두려워 언니를 외면했다. 그러나 강요에 의해 가담한 아이들은 어느 사이 스스로 범죄의 쾌감을 즐기게 된다. 그들은 실비아를 불로 지지고 폭행하고 매다는 온갖 범죄행위를 죄의식 없이 유희로 즐긴다.
  폭력은 일단 발현되면 상승작용을 일으켜 어느 순간 가해자에게는 끔찍한 쾌락과 유희가 된다. 상대방이 무기력하게 고통을 당하고 애걸하는 것을 보며 가해자는 자신의 힘을 느끼고 그것을 행사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피해자가 무기력해지면 질수록 더 큰 쾌락을 얻기 위해 폭력의 강도를 높이고 피해자를 잔인하게 짓밟음으로써 자아도취적인 만족에 빠진다. 그것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질 때 바로 이지메이다.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폭력의 노예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폐쇄된 구조 속에서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누구도 외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진실을 발설하지 않는다.
  실비아는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하며, 제니는 언니를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나머지 아이들은 거트루드라는 악에 저항하기보다 실비아를 학대함으로써 그녀의 인정을 받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사이 자발적인 공범이 된다. 그리고 서로 부추기고 격려함으로써 집단 폭력을 강화한다.
  평범한 거트루드는 왜 악마가 되었을까?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겪는 사회적 좌절감과 분노, 극도의 빈곤 속에서 여러 아이를 키워야 하는 스트레스, 허약한 신체적 정신적 조건, 알콜과 약물 중독.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녀는 실비아라는 착한 희생자를 찾아내 학대하고 그 영혼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대리만족한다.
  물론 그것만이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제목 ‘미국의 범죄’는 또 다른 원인을 암시한다. 즉, 거트루드의 폭력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의 산물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전형적이 범죄이다. 즉 거트루드의 범죄는 미국이라는 환경이 낳은 범죄이다.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모두가 이웃에 무관심한 현실, 모든 불행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개인이 그것을 다 감당해야 하는 미국 사회의 비인간성이 그런 범죄를 낳았다. 주민들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도로 교회에 나가고 사랑을 말하지만 그들이 믿는 종교는 공허하기 그지없다. 종교는 그들의 폭력과 위선을 가리고 합리화하는 편리한 제도일 뿐이다.
  이 사건 관련 기록들을 찾아보면 거트루드와 주변사람들이 실비아에게 가한 폭력이 영화에서는 많이 완화되어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재 사건에서는 거트루드는 실비아의 살에 담뱃불을 지지고, 그녀를 때리고, 매달고, 뜨거운 물을 끼얹고, 그녀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 문지르고, 배설물과 다른 오물을 먹이고, 발가벗긴 채 생식기에 콜라병을 쑤셔 넣는 만행을 저질렀다.
  거트루드는 법정에서 실비아가 매춘부이고 임신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시 결과 그녀는 처녀였으며, 임신한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재판에서 그녀는 자신이 약물 중독으로 심신이 허약한 상태여서 사건을 기억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그 사건을 맡은 검사는 “인디애나 주에서 일어난 가장 끔찍한 범죄”라고 기록했다. 그녀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 1985년에 20년 만에 가석방되었다. 가석방 당시 리킨즈의 가족과 인디애나 주민들이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러니 한 점은 그녀가 20년 간 복역 중 모범수였으며, 동료들로부터 ‘맘(Mom)’이라는 애칭을 들을 정도로 감옥 생활을 잘 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석방된 5년 후인 1990년에 사망했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nimaeumdaero/191573539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