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칼럼]야학 할머니의 노래 : 나이 서른에 우린 – 수다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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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쯤 전 일인데,

어느 날 야학 아이템이 잡혔습니다. 까막눈인 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노래, 풍물, 서예 등 간단한 취미 활동도 지도하는 곳이었습니다. 1년간, 또는 그 이상 이곳에서 열심히 공부한 이들의 졸업 전 마지막 수업이 취재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촬영을 시작하기도 전 저는 해결할 길이 없는 난관에 직면하고 말았습니다.

“PD님 참고하실 게 있는데요. 여기, 우리 반 13명 정도 계신데 2명만 얼굴 노출 허락하셨거든요?”

“예? 아니 그럼 수업을 어떻게 찍습니까?”

“기술적으로 뒤에서 찍거나 모자이크 처리하면 되잖아요.”

“……..”

할머니들 졸업하시는데 졸업 비디오 찍는 거라고 생각하세요부터 시작해서 테잎 하나씩 보내 드리겠다는 회유와, 이 촬영 펑크나면 선생님들이 슬퍼하시리라는 으름장과, 나 회사에서 잘린다고 젊은놈 인생 망치실 거냐는 읍소까지 총동원해 봤지만 할머니들은 완강했습니다.

“다 괜찮은데… 창피해서 안돼.”

“아니 뭐가 창피하세요. 이제 한글 다 읽고 당당하게 졸업하시는데 뭐가 창피해요? 대체 누구한테 창피하다시는 거예요? 자식들? 자랑스러워 할 거예요 우리 어머니 대단하시다고.”

“애들은 괜찮아. 남편도 괜찮고 친구들도 괜찮아.”

“그럼 누구요?”

“사돈네… 아들 사돈은 또 괜찮아. 우리 딸 시집간 사돈네… 보면 우리 딸 뭐가 되겠어?”

거기 계신 학생(?)들은 99%가 할머니였습니다. 남자 형제들은 어떻게든 학교의 문턱을 밟고 가갸거겨를 깨쳤지만 그조차 기회를 얻지 못해 평생을 까막눈으로, 시커먼 검정눈으로 지내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시집가서 힘들다고 친정에 편지한다고 글 안 가르쳐 주더라고… 친정에 편지한다고…”

“딸 시집가던 날, 신랑 부모 자리에 떡 서 있었던 거야. 딸년이 웨딩드레스 입고 뛰어나와서 엄마 자리 여기 아니라고 속삭이는데…”

진실로 그들을 모자이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들 얼굴이 변해요. 정말로 변해요, 처음엔 굳었던 얼굴이 정말 환해져요”라고 함께 환해졌던 야학 선생님의 말처럼, 그 얼굴을 모자이크 없이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었지요. 평생을 두고 써 온 ‘아저씨’라는 말이 이렇게 생겼구나. 내 아들 이름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감격에 겨워하는 그 얼굴을 덕지덕지 가리고 방송을 내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여전히 도리질을 치셨습니다. 부끄럽다는 것이었지요. 창피하다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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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지경이면 촬영할 수 없다고. 할머니들의 기쁨을 취재하러 왔는데 그것이 할머니들에게 되레 부담으로 다가선다면 애써 취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고 결정적으로 방송 일정이 여유가 있으므로 차라리 다른 아이템을 잡자는 것이 제 생각이었죠.

난감해 하는 야학 선생님들을 뒤로 하고 카메라 메고 야학을 빠져나오려는데 한 할머니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잠깐~” 뒤돌아 보니 가장 완강한 분은 아니었으되 대체로 얼굴 노출을 거부하는 쪽에 섰던 할머니였습니다.

“잠깐 얘기 좀 할 테니까 좀 기다려 봐요.” 이 말 한 마디를 남기고 할머니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조마조마하면서 얼마간을 기다리는데 할머니께서 미닫이 문 밖으로 고개를 내미십니다.

“총각~”

“저 총각 아닌데요?”

“그럼 아저씨. 이리 와 봐요. 우리 반에서 진짜 얼굴 나오면 안되는 사람 세 명만 빼 줘, 그럼 찍어도 돼.”

상당히 진전된 제안이었고 저는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수업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교육 과정이 끝나 졸업은 해야 하지만 주민등록증을 위조해서라도 다시 나오고 싶으시다던 할머니들은 선생님들의 지도를 따라 마지막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교과서를 띄엄띄엄 읽었고, 꼬부랑 말도 몇 마디 배워 써먹으십니다. 그리고 공작시간도 있었고 사물놀이를 벌이며 흥에 겨운 어깨춤도 풀어놓으셨습니다. 그들의 몸짓 하나 하나, 그들이 읽는 단어 하나 하나가 제게는 신선한 감동이더군요.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선생님을 부릅니다. 선생님, 칠판에 선생님 이름 써 봐. 왜요? 하여튼 써 봐. 선생님은 자기 이름을 칠판에 대문짝만하게 썼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가 제 옆구리를 쿡쿡 찌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김… 영… 란… 선생님. 어서 찍어. 저 이름이랑, 나이 서른 둘인데 아직 시집 못 갔음. 참하고 예뻐요. 이 방송을 보는 총각들 연락해요. 이름 기임… 여어엉… 라아안”

그때 선생님 눈에 설핏 눈물이 작은 보석처럼 맺히는 걸 봤습니다. 시집도 안 간 젊은 선생님은 이제는 선생님의 이름을 읽을 줄 알게 된 자랑스런 늙은 제자를 부둥켜 안으며 이별을 슬퍼했구요. 그렇게 그들의 마지막 수업은 끝나가고 있었죠.

수업 끄트머리에 선생님이 저를 부르더군요. 어떤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라는 겁니다. 고맙다고. 완강하던 할머니들을 그나마 촬영에 응하게 한 건 그 할머니의 공이라는 겁니다. 아까 “잠깐~~”하고 불렀던 그 할머니 말입니다. 역시 촬영을 퍽 싫어하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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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이 말 저 말 나누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습니다.

“할머니도 촬영 싫어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맘 바꾸셨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난데없이 이런 반문을 하셨습니다.


“PD 아저씨는 내가 왜 평생 까막눈이었을 것 같아?”


“글쎄요… 학교를 못 가셨고… 애들 키우고 어쩌고 하느라 바쁘셨고…”


니라니라 둘러대는데 할머니가 말을 자르더군요.

“아냐, 제일 큰 이유는 내가 창피해 했기 때문에 못 배운 거야. 글을 모른다는 게, 어른 되어서 나이 들어서 어디 가서 글 모른다고 하기가 창피하니까, 자꾸 숨기고, 창피하니까 배울 생각도 안 하고…”


“……..”


“창피해 하지만 않았어도 벌써 글 익혔을 걸. 세 살 박이 애들도 읽는 글을 왜 못 익혀. 아까 당신 왔을 때 정말 창피하더라고. 아이고 내 꼬라지가 뭐 잘난 게 있다고 전국 동네방네에 나 까막눈이요 광고할 건가. 아이고 창피해 아이고 창피해. 근데 내가 이러다가 아무것도 못했지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창피해서 창피해서… 오늘 당신 앞에서 또 창피해 창피해 하다 보니까 갑자기 신경질이 나는 거야. 이러다가 또 아무것도 못한다 싶더라고. 늙은 몸이 뭘 하겠냐마는…”


창피라는 말이 서른 번은 족히 넘어 들어갔던 그 할머니의 고백은 저에게 아주 큰 울림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그리고 거기 계신 할머니들은 일생을 까막눈이라는 모자이크 안에서 살아온 분들이었습니다.

그 모자이크를 씌운 건 당신들이 아니었지만 당신들 역시 그 모자이크를 벗어나 맨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창피하게 여겼고, 세상을 향해 둘러쳐진 모자이크 속에서 자신을 숨기다 보니 (까막눈임을 숨기다 보니) 자신도 세상을 검정 모자이크를 통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는 말씀이었지요.

여러 생각에 골똘히 잠기어 카메라 들고 왔다갔다를 하는데 다른 방에서 노랫 소리가 들려옵니다. 귀에 무척이나 익은 노랩니다. “나이 서른에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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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할머니가 음악 시간을 갖고 계셨습니다. 역시 손에는 “나이 서른에 우린”의 악보가 들려 있더군요. 할머니들은 그 노래 가사를 간신히 읽으며 가락을 익히고 계셨지요.

그런데 노래가 좀 그렇더군요. 나이 예순 일흔 된 분들한테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니. 음악 선생님한테 약간 볼멘 어투로 “웬 나이 서른입니까? 그 두 배는 나이 드신 분들인데.” 라고 항의 비슷하게 했는데 그 선생님이 또 한 번 제 뒤통수를 때리십디다.

“그때의 설렘을 드리자는 거죠. 할머니들의 서른 살이 얼마나 캄캄하셨겠어요. 하지만 그때는 젊으셨잖아요 그때의 설렘을 기억하시라는 뜻이죠. 이제 가사도 읽으시니까. 한 번 이렇게 읽어 보세요.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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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에 직원들과 밥을 먹는데 나이 서른 또래들을 보니 파릇파릇 그렇게 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고 보면 스물 남짓에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서 있을까” 노래하던 걸 어른들이 보면 얼마나 우스웠을까 싶기도 합니다. 동시에 서른으로부터 한참 지나온 오늘 문득 그날의 할머니들처럼 과거형으로 불러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고 있었을까

오늘날의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을까

우리들의 노래와 우리들의 숨결이

나이 서른에는 어떤 뜻을 지니고 있었을까.

저 거친 들녘에 피어난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나이 서른엔 우린 가슴에 담고 있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고 있었을까 

오늘날의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을까

우리들의 만남과 우리들의 약속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녔을까

빈 가슴마다 울려나던 참된 그리움의 

북소리를 나이 서른에는 듣고 있었을까






산하


편집 : 꾸물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ddanziNews/19452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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