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증오 범죄? by 수다피플

혐오 표현, 증오 범죄를 그룹 간의 우위 관계로 치환하여 선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일부 지식인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신물이 난다. 이런 비상식적 주장을 혐오 표현에 대한 이론의 주류나 정설인 것처럼 받아적고 유포하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미국의 증오 범죄에 공부하다가 난처한 장면을 만난 적이 있었다. 위스콘신에서 벌어진 한 사건 때문이었다.

1989년 10월 7일, 흑인 청년과 소년 몇 명이 주택가 아파트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영화 [미시시피 버닝] (1988)1에서 백인 남자가 흑인 어린아이를 두들겨 패는 장면이 나왔던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토드 미첼(20세)은 동료들에게 말했다.

“백인 좀 혼내주고 싶지 않아?”

바로 그때, 반대편에서 운 나쁜 백인 소년 하나가 걸어왔다. 소년이 일행을 막 지나치자, 미첼은 소리쳤다.

“백인 하나 가네. 가서 혼내주자구!”

흑인 청년들은 백인 소년에게 달려가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레고리 레딕(14세)은 정신을 잃었으며, 나흘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응급실 환자 병원

증오 범죄 가중처벌은 위헌? 

미첼은 검거되어 폭행치상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 범죄에 대한 최고형은 징역 2년이었다. 그러나 1심 배심원들은 그의 범행이 단순 폭행이 아니라 증오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종에 근거하여 피해자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증오 범죄는 가중처벌하도록 한 위스콘신 법률에 따르면, 미첼의 형량은 5년이나 더 늘어날 수 있었다. 이 법은 “범죄 대상을 인종, 종교, 피부색, 장애, 성적 지향, 출신국, 조상 등을 이유로 하여 의도적으로 선택할 경우” 증오 범죄로 보고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결국, 미첼은 증오 범죄가 적용되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원래의 형량보다 두 배 이상 중하게 처벌된 것이다. 징역 햇수로만 따지면, 사람을 두들겨 패서 의식불명을 만든 죄보다 증오를 동기로 한 죄가 더 나쁘다고 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쟁점이 생겼다. 우선 미첼 측은 자신에게 적용된 증오 범죄 가중처벌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누구를 싫어하는 것은 생각일 뿐이며, 이에 대한 처벌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라 항소가 진행되었다.

1992년, 위스콘신 주 대법원은 5대 2의 판결로 미첼의 주장을 인정하고 증오 범죄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판결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증오 범죄가 수치스럽고 개탄할 만한 것임은 자명하지만, 가해자들의 개인적 선입견도 보호받아야 한다. 헌법은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증오에 가득 찬 생각을 옹호하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헌법이 보호해야 할 사상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판결이 내려지자, 위스콘신 주 정부는 미국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주 정부는 증오 범죄를 규정한 주법이 처벌하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 그런 사상에서 나온 ‘행위’, 특히 차별적 사상에 근거하여 희생자를 선택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주 검찰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토드 미첼이 무슨 생각을 하든, 그것은 그의 권리이다. 그는 헌법이 보장하는 수많은 방식으로 그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피부색에 따라 사람을 선택하여 폭행할 권리는 없다. 그의 행위는 차별에서 나온 범죄로 처벌되어야 마땅하다.”

미첼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증오를 포함한 인간의 사상을 법적 처벌의 대상으로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폭행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폭행이 증오에서 나왔다고 보고 가중처벌하는 것은 바로 증오의 사상에 대한 처벌이라는 것이다.

흑인 가해자 측이 제기한 또 한 가지 중요한 논거가 있다. 바로 증오 범죄를 가중처벌하도록 한 주법이 거꾸로 원래 보호하려고 했던 그룹(말하자면 흑인)에게 적용된 데 대한 문제 제기였다.

흑인은 백인을 상대로 증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  

이 사건을 보고 내가 곤혹스럽게 여긴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증오 범죄는 일반적으로 어떤 집단과 그 구성원에 대한 증오에서 이루어지는 범죄를 뜻한다. 인종에 대입하자면 당연히 사회적 약자인 흑인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백인의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첼 사례는 거꾸로 흑인이 백인을 대상으로 하여 저지른 범죄에 증오 범죄를 적용한 것이었다. 이것이 말이 되나? 소수 인종이고 약자인 흑인이 다수 인종이고 강자인 백인을 상대로 하여 혐오 표현을 하거나 증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

미국 연방대법원 (출처: Joe Ravi, 위키미디어 공유, CC BY 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anorama_of_United_States_Supreme_Court_Building_at_Dusk.jpg

미국 연방대법원 (출처: Joe Ravi, 위키미디어 공유, CC BY SA 3.0)

1993년 6월에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미첼의 폭행을 증오 범죄로 보고 가중처벌한 것은 옳으며, 그러한 규정을 담고 있는 위스콘신 주법은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즉,

  1. 범죄의 가해자가 편견과 증오를 가진 것을 판결에 고려하는 것은 기존 판례에 비추어 보아 가능한 일이고,
  2. 그러한 동기로 범죄가 이루어졌을 때 그 동기에 주목하는 것은 다른 차별금지법들에서도 허용되는 것으로서 합리적이며,
  3. 위스콘신 주법의 증오 범죄 가중처벌 조항이 겨냥한 것은 표현이 아니라 행동이므로 표현의 자유를 들어 빠져나갈 수 없고,
  4. 증오에서 비롯된 범죄는 복수를 부르는 등 상황을 악화시키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 뿐이므로 가중처벌하는 것이 납득될 수 있으며,
  5. 법이 너무 광범위하여 의사 표현에 재갈을 물리는 자기 검열 효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상식과 합리에 비추어 보아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흑인이 백인을 대상으로 하여 저지른 범죄를 증오 범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증오 범죄의 법률적 정의에 해당하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피부색이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법 적용에 꼭 필요한 일관성 유지를 위해서도, 또 그를 통해 사회의 극단적 갈등을 예방하려는 측면에서도 합리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증오 범죄, ‘누가’ 하든 나쁜 것 

증오 범죄나 혐오 표현은 누가 하든 나쁜 것이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좋은 증오 범죄, 나쁜 증오 범죄가 있을 수 없으며, 좋은 혐오 표현, 나쁜 혐오 표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지식인들의 선전과는 달리, 혐오 표현을 규정하고 적용함에 있어 그룹에 관계없이 일관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다.

올해(2017년) 6월에 국회 입법조사처가 펴낸 [혐오 표현 규제의 국제적 동향과 입법 과제] (pdf)도 같은 점을 지적한다.

[혐오 표현 규제의 국제적 동향과 입법 과제] 중에서 (입법조사처, 2017. 6.)

[혐오 표현 규제의 국제적 동향과 입법 과제] 중에서 (입법조사처, 2017. 6.)

이 문건이 조사하여 보고하는 외국 사례를 보면, 대부분 혐오 표현의 내용만을 규정하고, 이에 대한 규제나 처벌을 적시하고 있으며, 그 발화자가 소수인가 다수인가를 따지는 경우는 없다.

정치가나 선동가들은 흔히 언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의미 부여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고 확산하며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법의 언어는 객관과 보편에서 존재 의의를 찾게 된다. 법의 언어는 선동의 언어와 가장 대척에 서는 존재일 것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선동가가 되는 것은 진실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유색인종과 백인종으로 분리된 식수대

역사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흑인은 백인과 비교해서 약자이고, 차별의 주체가 아닌 차별 대상이(었)기 때문에 흑인의 ‘혐오 범죄’는 성립할 수 없는가? 미국 연방대법원은, 범죄 주체가 흑인인지 백인인지에 따른 증오 범죄 성립 여부에 관해서는 판시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범죄 동기로서 범죄자가 품은 증오를 판결(형량)에 반영하는 일은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사진은 미국 사회에서 흑백 차별이 ‘상식’이었던 때의 식수대 모습. (출처 미상)


  1. 1964년 여름 미국 미시시피에서 벌어진 3명의 인권운동가 실종 사건, 일명 ‘미시시피 버닝’을 소재로 한 앨런 파커 감독의 동명 영화.

from 슬로우뉴스 http://slownews.kr/6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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