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대한 단상… 그래머 스케치에 부쳐… – 수다피플

요 며칠 전에 어느모로보나라는 분이 올린 영어를 그려주마 시리즈가 대문에 올랐다. 기사 내용을 반박하는 댓글들이 달리면서 다소 감정 싸움 비스무리하게 흘렀는데 원인 제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 생각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쓴다.

 

일단 나는 그분이 올리는 글을 폄하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물론 나중에 비아냥대는 댓글을 달긴 했지만… 그래… ‘조금도 없었다’라고 정정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고대, 중세 영문법을 연구해서 현대 영어의 특성을 밝혔다라고 주장해서 솔직히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그런 연구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첫 대목부터 아이들이 중학교 때 배우는 ‘교착어’와 ‘굴절어’라는 용어를 반대로 이해하고 계속해서 논지를 진행시키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가볍게 문제제기를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내 문제제기에 대해 아무 반응이 없고 일부 네티즌들이 댓글을 남기며 ‘큰 틀에서 보면 교착어와 굴절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등의 쉴드를 날리기 시작했다. ‘고대 영어와 한국어의 단어는 같았다’는 환빠 계열 뻘티즌의 댓글은 취급도 안 한다.  물론 그분들 말마따나 교착어와 굴절어의 구분은 큰 틀에서 보면 큰 의미가 없다. 영어 동사 역시 run, have, eat 등의 매우 기본적인 동사를 제외하면 우리말처럼 ‘-ed’ 어미가 붙어 활용하니 교착어적 특성을 보인다라 해도 무방하다. 다만 우리말 동사는 전부가 어미가 붙어 활용하는 것에 비해 영어는 run – ran – run, sit – sat – sat 처럼 단어 중간이 마치 굴절되어 꺾이듯이 변화하는 동사가 있다는 것이 영어의 굴절어로서의 특징이다. 즉, 정확히 말하자면 영어는 과거에 굴절어였고 기본적인 동사 어휘에서 굴절어적인 흔적이 남아 있으나, 비교적 현대에 성립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어들은 거의 ‘-ed’ 어미를 활용하는 교착어로 변모한 언어이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다. 그러나 어느모로보나라는 분은 처음부터 우리말처럼 조사나 어미가 붙어 활용하는 언어체계를 ‘굴절어’라 불렀다. 이건 큰 틀이고 뭐고를 떠나서 그냥 틀린 거다.

 

이런 문제에 다른 분들도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서 결국에는 댓글 게시판이 상당히 어지러워졌는데 정작 본인은 여전히 내 문제제기에는 답하지 않고 태도의 문제점만을 지적하면서 꿋꿋하게 3편까지 연재를 하고 있다. 왠지 이명박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정 본인이 그렇게 하시겠다면 이쪽도 좀 본격적으로 대응해드려야겠다 싶어 이 글을 올린다. 우선 어느모로보나님이 3편에서 드디어 본인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두둥! ‘5형식의 이해!’ 솔직히 이런 건 웃긴다. 당신이 빠른 속도로 주절거리는 미국인과 대화하는 입장이라고 가정해보라. 그 사람 말을 한국어로 번역하며 듣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일전에 쓴 글에서도 그런 습관은 포기하고 그냥 영어 어순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상대가 말하는 문장의 형식까지 파악하면서 들으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데, 상대와 대화하면서 그가 말하는 문장의 형식까지 파악하면서 이해할 정도의 능력자는 지구 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왜 자꾸 이런 뻘 이론들이 등장하는가 곰곰히 생각하다 몇 가지 결론을 내렸는데, 첫째로 많은 사람들이 영어와 영어학을 구분하지 못한다. 영어 실력은 상대가 말하는 대로 들으며 이해하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막힘없이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문법적인 요소에 대한 분석이나 문장 형식 분석은 부차적인 요소이다. 전자가 영어 실력이라면, 후자는 영어학 실력이다. 물론 영어학 역시 필요하긴 하지만, 당장 영어 실력 늘고자 하는 사람이 굳이 공부할 필요는 없다.

 

프로야구 초창기에 청보 핀토스가 허구연 해설위원을 감독으로 임명한 적이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명확하게 상황파악을 해서 팬들에게 해설해주는 사람이니 당연히 감독을 하면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허구연 위원은 불과 반 년도 못 채우고 감독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남들에게 상황 설명 해주는 것과, 본인이 직접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운용하는 것, 그리고 숱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트러블을 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문학 평론을 잘 한다고 그가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어가 그림언어(다른 언어는 그림 언어가 아니냐는 본질적인 의문이 있긴 하지만), 5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진리(?)’를 아무리 많이 알아봐야, 그게 본인의 영어 실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알아두면 좋다’라고 항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경험상, ‘몰라도 아무 상관 없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본인이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남을 잘 가르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브라질의 그레이시 가문은 19세기 말 우연히 일본의 유도가에게 배운 기술을 가문 대대로 연마해서 한때 MMA 계열에서 무적의 가문으로 이름을 드높인 바 있다. 갓난애의 식단을 조절했을 정도라니 그 가문의 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만약 이들에게 당신이 왜 그리 격투기를 잘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 뭐라 하겠는가.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해온 다양한 연습법이 다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미쳤는지 본인도 잘 모를 것이다. 그러다보면 엉뚱한 훈련이 효과적이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글세요. 어머님이 정성껏 만들어주신 요리?’ 뭐 이런 답변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게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요즘에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책이 꽤 인기 있는 모양이다. 경우에 따라 몇 가지 표현을 암기하는 것의 효율성은 나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 한 권을 모조리 암기하겠다는 것은 심각한 노력의 낭비이다. 흔하디 흔한 약장수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관심도 안 가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자가 외대 통번역 대학원 출신이고, 방송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 PD라는 점에 의혹과 관심이 생겨 책을 읽어보았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외대 통번역 대학원을 다니며 대단히 높은 수준의 듣기 훈련을 해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건 그냥 최상위권 사람들이나 하는 방법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 한 권만 외워도 된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 그의 삶은 영어로 실패해본 적이 없는 삶이었다. 그래서 진짜로 자신의 실력을 업그레이드 해준 영어 받아쓰기는 그저 본인의 수준 확인 차 하는 테스트 정도로 생각하고,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영어 우등생으로 만들어준 책 외우기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었다. 요즘 MBC 정상화를 위해 너무 바쁘신 것 같아 이런 문제를 지적할 타이밍은 아닌 듯하나, 아무튼 본의 아니게 후학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쓴소리는 들어야 한다. 물론, 그것 말고 다른 조언들은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훌륭한 조언들이다.

 

다시 그래머 스캐치를 본다. 본인이 어느 정도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지 나는 별 관심도 없다. 한 인간의 언어 구사력을 평가한다는 발상의 무의미성에 대해서는 숱하게 성찰한 바 있다.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본인의 감정을 심금을 울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이 겪은 탓이다. 그러나 본인의 언어 구사력과 언어학 지식을 구분 못하는 착각은 당연히 지적받아야 마땅하고, 고대, 중세 영문법을 섭렵해서 깨달은 진리가 고작해야 문장의 5형식이라면, 그저 슬프다. 빠삐용의 대사처럼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허비했다는 죄가 인정 된다. 

from 딴지일보 RSS http://www.ddanzi.com/ahimsa/196317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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